'대어 피해라'...IPO 기업 청약일정 '눈치싸움'
2021.06.15 16:01
수정 : 2021.06.16 09:1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등 기업공개(IPO) '대어'들의 청약 일정에 윤곽이 잡히면서 비슷한 시기 IPO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고심에 빠졌다. 일정이 겹칠 경우 투자금과 관심이 대어 쪽으로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큐라클은 이날 코스닥 상장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들 기업들과 잠재 투자자들은 크래프톤의 상장 일정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 9일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크래프톤의 증권신고서 제출일과 추후 일정에 따라 흥행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크래프톤 기업가치가 20조~30조원으로 추산되는 데다 특히 20일 전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 일반 공모주 중복청약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 경우 증권가에선 '마지막 중복청약 대어'를 잡으려는 투심에 따라 자금이 크래프톤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영향을 받은 에이치피오는 지난 5월 100대 1에도 못 미치는 청약 경쟁률(95.01대 1)을 기록했다. 에이치피오 청약은 SKIET 증거금 환불일부터 진행됐지만 시장의 관심은 이미 '증시 사상 최다 증거금'(약 41조)을 모은 SKIET에 쏠리면서다.
지난 5월 26일 상장한 진시스템은 제주맥주와 일정이 겹치면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제주맥주의 시가총액은 3000억원도 안 되지만 상장 전부터 '맥주업계 최초 코스닥 상장사'로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인 데다 청약일이 5월 13~14일로 같아 자금이 분산된 것이다.
당시 제주맥주 경쟁률은 1748.25대 1로 집계되며 이익미실현 특례상장(테슬라 요건) 중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진시스템의 경쟁률은 355대 1에 그쳤다. 5월에 청약을 진행한 7개사 중 에이치피오 다음으로 낮은 경쟁률이다.
이에 기업을 비롯한 상장주관사들은 크래프톤을 피하기 위한 '눈치싸움'에 나선 모습이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과 일반 공모주 청약 등은 증권신고서 제출 후 최소 15거래일이 지나야 하는 만큼 크래프톤의 행보가 확정되면 움직이겠단 전략이다.
플래티어 상장을 준비하는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톤과 겹치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려 하는 듯하다"며 "크래프톤 일정이 확정되면 플래티어 측에서도 상장 주관사와의 조율을 통해 수요예측 등 추가 일정 확정에 나설 것"이라고 귀띔했다.
큐라클과 함께 지난 10일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딥노이드의 경우엔 아직 증권신고서 제출 일정을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설명(IR)업계 관계자는 "대형사들을 피하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라며 "그래도 회사가 작년 12월부터 심사를 신청한 만큼 IPO를 더 미루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크래프톤을 피하기 위해 일정을 미루면 그 직후에는 또 다른 대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가 대기하고 있다. 이외에도 LG에너지솔루션, 현대중공업, 한화종합화학 등 수십, 수백조원짜리 기업들이 줄상장을 예고하고 있어 중소형사들의 고민은 깊어질 전망이다.
'대어와의 맞대결'을 꺼리는 건 같은 코스피 예비 상장사도 마찬가지다. 코스피 상장을 앞둔 SD바이오센서는 지난 11일 증권신고서를 정정 제출하며 희망 공모가 범위 상단을 기존 8만5000원에서 5만2000원으로 39%나 낮췄다. 공모 예정 금액도 최대 1조3000억원에서 6470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SD바이오센서 상장을 주관하는 관계자는 "백신 접종으로 진단키트주가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 크래프톤과도 청약일이 겹칠까봐 우려가 있었다"며 "날짜가 똑같이 겹치지 않아도 앞뒤로 청약이 몰리면 자금 분산 가능성이 있어 불리하다"고 말했다.
한편 크래프톤 측은 아직 증권신고서 제출일을 정하지 않았단 입장이다. 크래프톤 측 관계자는 "정확한 날짜는 미정"이라며 "최대한 빨리 증권신고서 제출을 마무리하고 IPO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jo@fnnews.com 조윤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