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작가가 그린 '보물섬'은?

      2021.07.08 14:44   수정 : 2021.07.08 14:44기사원문
오랜 시간 역사의 변방에서 잊혀진 얼굴들이 있다. 문명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는 언제나 침략자들로부터 자신의 삶과 터전을 빼앗긴 침탈의 역사가 있다. 정복을 통한 찬란한 승리의 그림자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넓고 깊다.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 이어져온 제국주의의 역사의 궤적 중 신대륙 개척은 다른 침략의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난을 받지 않은 채 이어져왔다. 북미와 남반구의 몇몇 국가들이 자신들의 찬란한 역사의 시작을 200여년 전부터로 추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학살당하고 비옥한 동부의 땅을 벗어나 황량한 서부로 향했다.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조상인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과 남태평양의 원주민들도 유럽인이 금광 개척과 죄수들을 가두기 위해 상륙한 18세기 말부터 비옥했던 해안가의 땅을 떠나 사막으로 가득한 내륙으로 점점 밀려 들어왔다.

보이드는 이러한 자신의 조상들의 과거사를 다시 돌아보며 주류의 역사를 뒤집어보는 작업들을 진행해왔다. 호주 내에서 소수민족이 되어버린 에보리진의 침탈 역사를 스코틀랜드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과 미국 MGM사가 1962년 제작한 영화 '바운티호의 반란'의 내용과 이미지를 차용해 그려냈다.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영국 여왕의 초상과 초대 호주 총독 '제임스 쿡'의 초상을 작품에 담아내고 이를 통해 유럽인들에게 금은보화가 묻힌 보물섬 정도로 여겨졌던 조상들의 땅과 그 소설 안에서 비춰진 원주민들의 모습을 역으로 재조명했다. 작가는 자신의 처지와 위치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했는데 자신의 회화 작업 위에 투명한 풀로 볼록한 점을 찍어 이를 통해 "우리 각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를 재현"하고자 했다.

자신의 기원에 대해 늘 궁금해하던 작가는 이번에 첫선을 신작에선 부모와 조상의 시대를 넘어 우주의 근원까지 파헤친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암흑물질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풀로 만든 볼록한 원형의 점 사이를 검은색으로 채웠는데 모든 빛을 흡수해버릴 것 같은 검은색의 여백을 바라보면 우리가 잃어버렸던 역사는 무엇인지, 또한 시공간을 넘어 우리가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여전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세로 한국을 찾지 못한 작가는 "나의 작품은 모두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고찰과 '나'를 이룬 선조들의 존재로부터 시작한다"며 "작품 속 렌즈와 같은 점들은 우리가 하나의 집단으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8월 1일까지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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