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카카오, 대한민국 1등 부자 '브라이언'
2021.08.02 11:26
수정 : 2021.08.02 13:32기사원문
자수성가 성공신화 일궈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모범
한국 자본주의 새 지평 열길
[파이낸셜뉴스] "'배는 항구에 정박할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배의 존재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나를 다시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원동력이 됐다."(김범수, 카카오 출시 10주년 영상메시지. 2020년 3월18일)
김범수('브라이언') 카카오 의장이 대한민국 1등 부자가 됐다는데 왜 쥐뿔도 없는 내가 신이 나는지 모르겠다.
◇벤처 창업가의 희망
한국 산업계는 유산형 기업들이 지배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마다 발표하는 기업집단(재벌) 지정 현황을 보자. 1위는 당연히 삼성이고 동일인 곧 총수는 이재용이다. 그 뒤를 정의선(현대차), 최태원(SK), 구광모(LG), 신동빈(롯데)이 잇는다. 조금 더 내려가도 한화, GS,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한진, 두산 등 전통의 강자가 즐비하다. 20위권 안에 든 자수성가형 인물은 김범수가 유일하다. 그러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카카오는 자산 기준 지난해 재계 순위 23위에서 올해 18위로 뛰어올랐다. 계열사는 118개로, SK(148개)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카카오그룹 시가총액은 카카오뱅크 상장(8.6) 이후 단숨에 100조원 클럽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5위 규모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김범수는 아이돌(우상)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의 무게를 달면 김범수 한 명이 국회의원 300명보다 더 나갈 것 같다.
자수성가형을 선, 유산세습형을 악으로 보는 시각은 단순하다. 대를 잇는 기업 중에서도 훌륭한 기업이 차고 넘친다. 삼성, 현대차가 그렇고, 스웨덴에서 삼성의 역할을 하는 발렌베리그룹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형 기업인이 많이 배출될수록 좋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벤처 정신으로 충만한 젊은 창업자가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미국을 보라. 신생 기업이 끊임없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을 보면서 꿈을 키운다. 한국에선 카카오와 네이버가 그 역할을 한다. 김범수 의장은 돈에 쪼들리는 창업자들에게 "언젠가 나도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카카오의 힘
카카오의 힘은 무섭다. 국내 2호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는 8월6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상장과 동시에 KB금융, 신한지주에 이어 시가총액이 금융권 3위로 점프한다. 카뱅 윤호영 대표('대니얼')는 온라인 기자간담회(7.20)에서 상장을 계기로 넘버원 금융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금융지주 또는 은행의 최고경영자라면 기절초풍할 이야기다.
21세기는 플랫폼 싸움이다. 플랫폼을 잡는 기업이 세상을 지배한다. 오죽하면 아마존드(Amazoned)라는 신조어가 생겼을까. 어어 하다 아마존에게 당했다는 뜻이다. 한국에선 카카오와 네이버가 플랫폼 최강자로 군림한다. 분야를 좀 더 세분하면 쿠팡, 우아한형제들(배민), 야놀자 등이 있다. 기존 강자들이 바싹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어 하다 카카오한테 당할지 모른다. 은행도 예외가 아니다.
카뱅에 이어 카카오페이도 연내 상장을 목표로 몸을 푸는 중이다. 카카오페이는 장차 초대형 투자은행(IB)이 목표다. 지난 십 수년 간 금융당국은 한국판 골드만삭스 육성책을 수도 없이 내놨다. 너댓개 대형 증권사들이 IB 사업에 도전했지만 글로벌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이다. 바로 이 시장에 카카오페이가 도전장을 던질 참이다. 성패는 두고 볼 일이지만 IT 혁신 기술로 무장한 카카오페이는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작년 9월 코스닥에 상장한 카카오게임즈는 단박에 코스닥 시총 2위(약 6조8000억원)에 올랐다. 지난 6월에 출시한 게임 '오딘'은 선풍적인 인기몰이 중이다. 도대체 카카오가 하지 못하는 게 뭐냐는 말이 절로 나올 판이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범수는 돈 씀씀이가 과거 재벌 총수들과 다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바로 이거다. 그는 지난 3월에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이 이끄는 슈퍼리치 자선클럽 '더 기빙 플레지'에 가입했다. 재산의 절반을 좋은 일에 쓰겠다고 했다. 앞서 김봉진 배민 창업자도 같은 곳에 가입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그런데도 정글이 인간미를 잃지 않는 데는 앤드류 카네기, 존 록펠러 같은 기업인 출신 박애주의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게이츠와 버핏은 그 후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일찌감치 재산 희사를 약속했다.
지금 사람들은 카네기를 카네기홀, 카네기멜론 대학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카네기가 나올 때가 됐다. 아니, 지났다. 조선시대 만석꾼 경주 최부자댁에는 구멍 뚫린 뒤주가 있었다고 한다. 배고픈 이가 쌀을 집어가라고 일부러 구멍을 냈다.
김 의장은 지난해 카카오 출시 10주년을 기념하는 영상 메시지에서 "카카오의 지난 10년이 '좋은 기업'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위대한 기업'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위대한 기업을 넘어 존경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또한 훗날 김범수 의장이 최고 부자를 넘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얕고 팍팍한 한국 자본주의에도 존경받는 기업, 존경받는 기업인이 나올 때가 됐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