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범죄 손배 시효, 구체적 손해 발생 시점부터 시작"

      2021.08.19 12:05   수정 : 2021.08.19 12:05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성폭력 범죄에 대한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9일 김은희씨가 테니스 코치 A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가 체육계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가장 먼저 폭로하면서, 김씨의 사건이 ‘체육계 1호 미투’로 불리고 있다.



김씨는 2001년 7월부터 2002년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코치였던 A씨에게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김씨는 초등학교 4~5학년이었다.
김씨는 미성년자일 당시에는 보복이 두려워 고소하지 못했고, 성인이 됐을 당시에는 미성년자 성폭행의 공소시효가 폐지와 증거 확보 등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법률가 등으로부터 듣고 고소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2016년 5월 김씨는 주니어 테니스대회에서 A씨를 우연히 마주쳤다. 어렸을 때의 피해 기억이 떠올라 충격을 받은 김씨는 3일간 기억을 잃는 등을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이에 김씨는 지난 2018년 6월 A씨를 상대로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또 김씨가 다른 이들의 증언을 확보해 고소하면서 A씨는 지난 2018년 징역 10년이 확정됐다.

1심은 김씨가 낸 민사소송에 A씨가 대응하지 않으면서 김씨의 승소로 끝났다. 하지만 2심에서 A씨는 마지막 범행이 있었던 2002년부터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인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미 소멸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김씨는 A씨의 형사유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 손배소 청구가 가능했다”며 “소멸시효 전 소송을 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봤다.

손해배상채권의 단기 소멸시효 기산일이 1심 판결 선고일인 2017년 10월 13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 재판부는 “김씨의 손해인 PTSD는 최초 진단을 받은 2016년 6월에 현실화됐다고 봐야 하고, 이는 손해배상 채권의 기산일이 된다”며 “장기소멸시효도 지나지 않았다”고 판시하며 A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오랜 시간 전 성폭행을 당해 그 피해가 뒤늦게 발생했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권리가 언제까지 인정되는지 여부였다. 민법 766조 1항은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입은 손해를 알게 된 날부터 3년 이내에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2항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까지 권리가 존재한다고 돼 있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범죄로 인한 PTSD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들이 발현되더라도 그 당시엔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면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폭행의 경우 가해자와 가까운 관계인 사례가 있어, 실질적인 손해가 언제부터 발생했는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전문가로부터 PTSD 진단을 받은 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이 된 것이고, 이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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