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철이 돌아왔다

      2021.09.04 10:34   수정 : 2021.09.04 10:3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광양=황태종 기자】흔히들 전남 광양의 가을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전어가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망덕포구로 떼지어 오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망덕포구 무적섬 광장에서는 해마다 전어축제가 열린다. 코로나19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는 열리지 않지만, 전어는 어김없이 풍요로운 가을의 대명사로 우리를 찾아온다.



전어는 맛도 맛이지만 칼슘, 미네랄,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어린이들의 뼈 성장과 어른들의 혈관 건강까지 두루 챙길 수 있다.

특히 망덕포구는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으로 빠른 물살 만큼 전어의 운동량이 활발해 탄탄한 육질과 고소한 맛을 자랑한다.


포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망덕포구의 횟집은 회, 무침, 구이 등 다채로운 전어 요리를 맛깔스럽게 차려낸다.

쑴벙쑴벙 썬 전어회를 구수한 된장에 찍어 한입 가득 넣는 순간, 우리가 먹는 것이 단지 한 점의 생선회가 아니라 익어가는 가을이란 걸 금세 알게 된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전어는 새콤달콤 회무침으로도 인기가 높고, 왕소금을 뿌려 노릇노릇 구워낸 전어구이는 머리까지 통째로 먹을 만큼 버릴 게 하나도 없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망덕포구가 아니더라도 전어가 생산되는 곳은 늘어났지만, 망덕포구의 풍광과 손맛은 따를 수 없다.

망덕포구에서 먹는 전어의 맛은 설명되지 않으며, 다만 DNA처럼 깊게 새겨져 가을이면 그 맛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래서일까 전어에는 유쾌하고 해학적인 서사도 그득하다.

전어라는 이름에는 돈을 생각하지 않고 사 먹을 만큼 맛있다는 뜻에서 '錢漁(전어)', 머리부터 버리지 않고 모두 다 먹을 수 있어서 '全漁(전어)' 등 다양한 뜻이 전해진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 '전어머리엔 깨가 서 말', '가을 전어 한 마리면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라는 말들에 얽힌 서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전어를 맛보는 색다른 즐거움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가을 해그림자가 길어지면 포물선을 그리듯 망덕포구를 따라 놓인 데크를 걸어야 한다.

쪽빛 바다를 바라보며 걷노라면 어디선가 뱃머리에 만선 깃대를 꽂고 춤을 추며 가족이 기다리는 망덕포구로 귀향하던 '광양 진월 전어잡이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전남 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광양 진월 전어잡이소리'는 광양만을 중심으로 전승돼온 어로(漁撈) 노동요로 섬진강 하구와 남해안 생태에 깃든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지금도 1999년 결성된 '진월 전어잡이 소리 보존회'를 주축으로 신답마을 주민들에 의해 연행되면서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망덕포구는 550리를 달려온 섬진강을 말없이 받아준 것처럼 그렇게 또 모든 걸 품어 간직한다.

일제강점기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의 유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이곳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에서 보존된 것도 망덕포구가 가진 포용력 때문은 아니었을까.

광양 유일의 섬으로 남은 배알도도 그렇게 포구에 안겨 아름다운 섬 정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9월 중 망덕포구와 배알도를 잇는 해상보도교가 완공되면 바다 위를 걸어 배알도를 플랫폼으로 배알도 수변공원까지 거닐 수 있게 된다.

박순기 광양시 관광과장은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전어는 가을을 대표하는 건강한 먹거리이며, 망덕포구는 전어를 가장 전어답게 맛볼 수 있는 미식여행지이다"고 말했다.


이어 "광양은 포구, 강, 섬 등을 두루 여행할 수 있는 낭만여행지로 전어잡이소리, 윤동주의 시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공간이다"고 덧붙였다.

hwangtae@fnnews.com 황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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