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사각지대' 불법체류자… 코로나 발생률 내국인의 9배
2021.09.30 18:48
수정 : 2021.09.30 18:48기사원문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민들의 경우 자국어 이외 할 수 있는 언어가 전무한 경우가 많아 백신 관련 정보를 이해하는 것도, 백신 접종 예약·접수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방글라데시인 벨라옛씨
정부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불법체류 이주민의 백신 접종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백신 접종을 받더라도 단속·출국조치 등 불이익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당국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다.
■ "또 잡혀갈라" 씻기지 않는 불신
9월 30일 방역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외국인의 집단감염 급증에 불법체류 이주민 대상 '통보의무 면제제도' 집중 안내 방침을 지난 28일 발표했다. 불법 체류 중이라도 백신 접종을 이유로 단속하거나 추방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에 외국인 등록번호가 없는 불법체류 이주민도 임시관리번호만 발급 받으면 누구나 접종 예약이 가능해 졌다.
그럼에도 지난달 기준 불법체류 외국인 39만명 가운데 절반에 달하는 42.2%는 백신 미접종 상태다. 백신 접종 초기에 지방자치단체가 불법체류 이주민의 접종을 두고 혼선이 빚어져 이주민들이 여전히 당국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송은정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사무국장은 "접종 초기에 불법체류 이주민이 백신을 맞으러 갔다가 당국에 검거되는 사례가 있었다"며 "정부는 어떠한 사과나 재발방지 논의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 용인의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관계자도 "지난 8월 전북 전주에서 PCR 검사를 하던 불법체류 이주민이 당국에 단속된 사례가 있었다"며 "이주노동자들 사이에도 깊은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 해당 사례를 공유하며 '백신을 접종하러 가서도 단속되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주민들이 제공받는 백신 정보의 언어 문제도 제기됐다.
경기 남양주 이주민 지원단체 샬롬의 집 관계자는 "백신 접종 문자도 언어는 영어 또는 한글로만 제공돼 이주민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며 "정확한 정보에 대한 언어 지원이 부족하니 주변 소문을 통해 백신 사망 사례를 접한 이주민들이 백신 접종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양주 지역 백신접종 외국어 봉사자 벨라옛씨는 "한 번은 부산 지역에서 미등록 외국인의 백신 접종 접수 과정을 도와줄 수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상했다.
■ 사업주와 마찰 등 어려움 여전
불법체류 이주민은 열악한 근무 환경은 물론 사업주와 마찰로 백신 휴가 등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송 사무국장은 "불법체류 이주민들은 보건소에 임시관리번호를 발급 받기 위해 한 번, 백신을 맞기 위해 또 한 번, 최소 두 번을 방문해야 한다"며 "주말에도 겨우 쉴 수 있는 이들에겐 사실상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백신 접종 예약을 앞둔 불법체류 이주민이 사업주의 변심으로 접종이 취소된 사례도 있었다"고 했다.
샬롬의 집 관계자는 "어떤 지자체에서는 민간 이주민 지원 단체를 통한 대리 접종 신청이 가능하고, 또 다른 지자체에서는 안되는 등 각 지역마다 접종 접수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아무리 당국에서 새로운 대책을 내놔도 이주민들 사이에선 '불신'이 씻기지 않는 상황"이라며 "방역당국과 불법체류 이주민 간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