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으로 산 부모님 항공권..이스타항공은 답이 없었다

      2021.11.20 19:03   수정 : 2021.11.20 23:3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12일 서울회생법원 3별관 제1호 법정에서 법정관리에 돌입한 이스타항공의 운명을 가를 채권자 관계인집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 눈길을 끄는 발언자가 있었습니다. 이스타항공 피해자 모임의 정훈 대표였습니다.

처음엔 "피해액이 20만~100만원 밖에 안된다"는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스타항공으로부터 받아야 할 돈이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에 이르는 채권자들이 모인 자리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이스타항공의 회생 여부를 취재하러 온 기자였지만, 저 또한 힘없는 일개 소비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들뜬 마음으로 값비싼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항공사는 경영난을 이유로 운항을 중지했습니다.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여행사도 나 몰라라 합니다. 답답하고 분통 터지는 상황입니다.

정훈 대표는 2020년 2월 이스타항공권 2매를 예매했습니다. 그해 추석쯤 예비신부와 함께 외국에 머물고 계신 예비 장인장모를 뵙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입출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다. 초조한 마음으로 출국 한달 전까지 기다렸지만 어떠한 안내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직접 여행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여행사는 항공사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여행사, 항공사 모두 고객에게 먼저 연락해줄 의무가 없다는 설명도 함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스타항공이 파산 위기에 내몰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게 됩니다.

이스타항공은 홈페이지, 전화 업무가 모두 중단됐습니다. 연락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타항공 본사를 찾습니다. 그는 "몇몇 직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며 "이미 몇 달 전부터 임금조차 체불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가 이 지경인데도 항공권을 계속 판매하고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지난 12일 승객 피해자들을 대신해 관계인 집회에 참석했던 겁니다. 그는 이날 집회에서 "이스타항공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전화나 문자로나마 전해줬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간 (이스타항공이) 고객을 대한 태도를 봤을 때 회생계획안이 승인돼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공개 발언을 통해 회상계획안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결국 이들의 바람과 달리 회생계획안은 82.04%의 높은 찬성률로 통과됐습니다. 1인 1표가 아닌 1원 1표이기 때문입니다. 채권액이 소액인 승객 피해자들은 인원수가 아무리 많아도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 처음 결제한 항공권 금액의 4.46%만 돌려받게 됐습니다.


사실상 이날 집회는 채권자들이 받을 금액 중 한 푼도 못 받을지, 아니면 4.46%만 받을지 선택하는 자리였습니다.

정훈 대표는 이날 관계인집회에 다녀온 뒤 본인의 블로그에 '일반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습니다. 작년 8월 '이스타항공 환불 불가 사태'라는 첫 글을 쓴 이후 17번째 글입니다. 전에 쓴 글과 다르게 마지막 글이라는 걸 의미하듯 (완)이라는 글자를 제목에 덧붙였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이스타항공은 저가 항공이었습니다. 그만큼 부유하지 못한 분들이 일상의 소소한 추억, 기념, 선물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으로 이스타를 선택했습니다. 그 관계자가 제 글을 보게 된다면 다시 한번 당신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느낀다면 최소 동일 항공권으로 되돌려주는 모습으로 보답하길 바랍니다."

그의 글에는 "사회 초년생인 제가 처음으로 번 월급으로, 부모님 모시고 가려는 해외여행,, 첫 티켓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아서,,정말 씁쓸하고 속이 쓰립니다" "외벌이로 어렵게 돈을 모아 아이들에게 해외여행을 선물해주기 위해 가격이 저렴한 이스타항공을 예약했고..이게 이렇게 2년 가까이 저와 가족을 괴롭게 할지 몰랐네요"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지난 16일 정훈 대표와 통화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다음은 정훈 대표와의 일문일답입니다.

-마지막 글에 왜 '완'이라고 붙였나.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판결에 대해 더이상 언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피해자분들이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소설도 아니고 무한정 글을 쓸 수도 없다. 저와 피해자들이 그간 무엇을 했는지 적어두고 확실한 맺음을 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다 기록 해뒀으니 나중에 유사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참고할 수도 있다.

-피해자 수와 피해 금액은 얼마나 되나
▲민사 소송을 준비하면서 대략 종합해봤다. 피해자는 총 1400명에서 1500명까지 집계됐다. 피해 금액은 1200만원에서 1300만원까지 파악됐다.

-1인당 금액으로 치면 소액이다.
▲그렇다. 하지만 적은 돈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피해자들에겐 소중한 돈이다. 회사가 파산할 순 있지만, 파산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항공권을 판매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사기를 당한 것과 같다.


-회생계획안 통과를 예상했나.
▲변호사분들은 회생하지 못한다고 봤다. 부채가 너무 많고 회생 뒤 기대 가치도 매우 낮다고 했다. 하지만 저는 통과할 거라고 봤다. 정치적으로 엮인 회사라고 생각한다. 북한 관광 독점사업을 이스타항공에 주려 했다고 야당이 주장하고 있다. 이상직도 보석 석방되지 않았나. 이스타항공도 어영부영 넘어갈 거라고 봤다.

-이스타항공은 회생계획안에서 일본 불매운동, 코로나19 등 인한 항공업 시황 악화로 어려움에 빠졌다고 했다.
▲말도 안 된다. 다른 항공사들은 왜 아직 영업을 하고 있나. 코로나19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는 건 기만이다. 회생계획안에 이상직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관계인집회를 마치고 이스타항공 직원들하고 직접 대화를 나눴다.
▲현장에 간 이유다. 앞으로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만 했다.


-동일한 항공권으로 보상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정도 양심이 있는 회사였다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고 본다. 그건 나중에 정상화됐을 때 얘기다. 정상화의 징후들이 보이면 얘기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른 피해자분들도 현금보다 대체 항공권을 받고 싶어 한다.

-향후 계획은.
▲피해자분들이 모인 단톡방이 있다. 변제금을 받을 때까지 남아달라고 부탁했다. 검찰 고발도 고민 중인데, 구체화한 건 아니고 아직 생각만 하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데도 계속 운영을 했다. 이 사태를 방임한 임원 등 고위 직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스타항공 직원들이 방임하며 소비자를 기만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길 바란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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