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어시장 50년 노하우에 현대화 접목… K-시푸드 메카로"
2021.12.15 18:15
수정 : 2021.12.15 18:15기사원문
본격적으로 한겨울이 다가옴을 알린다는 절기 대설(大雪)이 나흘 지난 11일 토요일 오전 6시30분. 주말인 데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적막한 인근 풍경과 달리 부산공동어시장에는 이미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는 차량과 사람들 사이에서 박극제 부산공동어시장 대표(사진)가 장화를 신은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한 시간 전에 출근해 벌써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온 후였다.
반세기 넘는 부산공동어시장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 현대화사업이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예산 등 추가 협의가 필요한 사항도 적지 않다.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만큼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을 터. 부산경제의 한 축인 수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공동어시장 안팎을 둘러싼 여러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조율사 역할을 자처하는 박 대표가 휴일도 없이 매일 새벽 현장을 직접 챙기는 이유다.
■'40년 무상임대'로 공익 실현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에는 우리나라 수산업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부산경제를 위해 공동어시장을 부산의 자산으로 남기겠다는 우리 모두의 의지가 반영돼 있습니다."
박 대표는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을 두고 공공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진행이 지체돼서는 안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축구장 6개를 붙여놓은 규모의 부산공동어시장은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가장 큰 수산물 위판장으로 꼽힌다. 하루 최대 처리물량만 3200t에 달한다. 특히 고등어의 경우 부산의 시어(市魚) 답게 부산공동어시장이 국내 위판량의 80%를 소화하고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이 멈추면 당장 우리네 식탁에서 고등어를 보기 힘들어질 수 있단 얘기다.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은 단지 노후시설을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 50년 넘게 이어져온 '시스템'을 선진화하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다. 주요 먹거리로서 수산물의 위생과 안전성을 담보하고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현대화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 대표는 "부산공동어시장 조합공동법인도 이번 현대화 사업이 수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요한 미래지향적 사업이라는 점에 모두 동의하면서 감정평가 1200억원이 넘는 부지를 40년 동안 처분하지 않고 시에 무상임대하기로 했다"면서 "재산행사 금지를 받아들이면서 5개 조합에서 각각 240억원씩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게 공익을 위한 게 아니면 뭐겠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전국에 11개 중앙도매시장이 정부 승인을 얻어 각 지자체가 개설자가 돼 운영되고 있는데 부산공동어시장도 국비와 시비가 투입되면서 중앙도매시장으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공공성이 충분히 확보된다"며 "각 조합이 부지에 대한 권한 행사권을 40년이나 시에 양도했다는 것은 결국 공동어시장의 미래를 수산업계를 짊어질 후손들에게 맡기겠다는 의미로 부산의, 부산시민의 자산으로서 공동어시장이 갖는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공동어시장은 당장 내년 상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남부민동 어시장 철거 과정에서 위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감천 국제수산물도매시장과 적극 협조할 방침이다. 이후 2023년 착공해 2026년 준공하겠다는 목표다. 공동어시장 현대화가 완료되면 최근 예비타당성조사를 최종 통과한 암남동 일대 '부산 수산식품산업 클러스터 조성사업'과 연계해 부산이 'K-시푸드'의 글로벌 확산을 선도하는 메카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감이 감돈다.
박 대표는 "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이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늦춰진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해내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품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금은 정부와 시의 행정적 지원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현장은 물론 여러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조율해 사업이 궤도에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뉴 노멀시대 명품 수산물시장 지향
지난 11월 네이버 쇼핑라이브 플랫폼 '차카데이'에서는 쌍둥이 개그맨 이상민, 이상호가 나와 고등어를 판매해 눈길을 끌었다. 부산공동어시장이 코로나19로 침체된 수산업 활성화와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기획한 라방(라이브방송)으로 '배 들어온다'는 슬로건에 걸맞게 새벽에 경매된 선어를 바로 가공공장으로 직송해 당일 판매하는 콘셉트를 내세워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부산공동어시장 브랜드를 공식적으로 직접 론칭해 판매한 사례는 1963년 개장 이후 처음이다. 부산공동어시장은 이 과정에서 생선을 상품화하는 지역 수산업체에 과감한 판매지원금을 책정해 소비자가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상의 상품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소규모 기업이 많은 수산가공업체 특성상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시장에 알리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국내 최대 수산물 위판장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전국에 판로를 확대해 지역 수산업계와 상생하는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표는 "현대화라는 말 속에는 5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를 살리되 새로운 방식의 위판장으로 진화하는 것, 시대에 맞춰 지금 세대들을 위한 맞춤형 전략을 도입하는 것, 공동어시장을 그 자체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과 같은 함의가 모두 포함돼 있다"면서 "이 모든 게 직접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인 만큼 시행착오도 적지 않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일어난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력난을 해소하고 일하는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현재 국제수산물도매시장에서 2대의 고등어 선별기를 시범운영하고 있다. 4단계에 걸쳐 크기별로 고등어를 자동 배분해주는 기계로 같은 시간 동안 기존 대비 절반도 안되는 인력으로 분류작업을 해낸다. 무엇보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일해야 했던 환경을 서서 일할 수 있도록 바꾸면서 주로 여성에 치중된 일자리를 다양화하는 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나무상자를 더 위생적인 플라스틱 상자로 바꾸고 작업 동선을 최적화하는 등 점진적으로 자동화 시스템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 국내 업체는 물론 노르웨이, 일본 등 해외 업체와도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맞춤형 설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생물에 그치지 않고 가공품 형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공동어시장이 위판에 그치지 않고 믈류에서 배송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가 머지않았다.
박 대표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산공동어시장 현대화사업은 수산업계는 물론 부산시민이 함께 이뤄낸 성과인 만큼 앞으로도 최고의 신선한 수산물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시민분들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고 코로나로 지친 어민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많은 수산물 소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defrost@fnnews.com 노동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