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서 음식점 운영한 A씨, 2년간 코로나 지원금 1억6천만원 받았다는데…
2022.02.13 17:54
수정 : 2022.02.14 15:16기사원문
2년간 반복된 코로나19 비상 조치로 길거리 경기는 활력을 잃고, 침체 터널에 갇힌 형국인데, 이런 경제 현실과 달리 일본 전역의 도산 업체 수(2021년 연간 총 6030건, 도쿄상공리서치)가 1964년 이후 57년만에 역대 최저라는 깜짝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코로나 확산 1년차인 2020년 대비로도 22%나 감소한 수치였다.
이 역설적 상황을 놓고, 일본의 경제전문가나 실제 도쿄 현지 자영업, 중소기업주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구동성 '보조금의 힘'을 지목했다. 도쿄의 한 음식점 업주는 단적으로 말하면, "보조금이니 협력 지원금이 없었더라면 못버티고 죽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정의 힘, 엔화의 힘이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 확산 1년차인 2020년부터 총 3번에 걸친 코로나 경기대책과 추가경정예산, 1000조원이 넘는 본예산을 매년 편성했다.
이 거대 예산 가운데 실제로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쥐어 준 코로나 지원금은 과연 얼마였길래, 코로나 확산기 도산이 외려 감소했다는 반전이 가능했던 것인가. 또 경제 전체에는 어떤 파급 효과가 만들어진 것일까.
■도쿄의 음식점주 2년간 얼마 받았나..."4억 넘게 받아"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일본 도쿄도(都)와 일본 정부 내각부, 내각 관방, 후생노동성 등 홈페이지와 각종 보조금 사이트에서 '음식점 자영업자'를 기준으로 지난 2년간 받았거나 또는 올 상반기 중으로 받을 수 있는 '갚지 않아도 되는' 급부금들을 살펴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종류가 매우 많아 내용을 숙지하고 파악하는데만 꼬박 이틀 가까이 걸렸고, 한국과 비교할 때 받는 액수의 '단위'가 크게 달랐다.
먼저, 대표적인 지원금이 방역 비상조치에 따른 휴업·영업시간 제한(오후 8~9시까지)에 따른 손실 보상금이다. 정부의 영업시간 단축 요청에 응해줬다고 해서 지급되는 돈이다.
도쿄 미나토구에서 소규모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주 A씨는 지난 2년간(2020~2021년)그가 받은 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협력지원금 내역을 본지에 직접 공개해줬다. 2년치를 합산하니, 대략 총 1600만엔(약 1억6600만원)이 나왔다. 한 달 평균 약 700만원 가까운 돈이 휴업·영업시간 단축 요청에 응해준 대가로 지급됐다. 액수가 자체가 커서, A씨에게 "여타 지원금을 제외한 오로지 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협력 지원금이냐"고 다시 확인할 정도였다. A씨의 경우, 점포 월세 지원금(월 15만엔으로 상정해 6개월간 받은 경우)을 합산한 코로나 확산 2년간 월평균 지급액이 약 700만원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여타 1회성 뭉칫돈 보조금들을 제외한 액수다.
점포 당 '협력의 대가'로 음식점주들에게 거액이 지급됐지만, 소위 '저녁 장사'를 하는 경우 이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쿄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긴급사태 선언 기간에 점포들의 휴업, 영업시간 단축 참여율은 시부야, 긴자, 신주쿠, 신바시 등에서 95~100%였다고 나와있으나, 실상은 크게 달랐다. 13일 현재는 코로나19 변이종인 오미크론 확산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야간 시간대에 휴업·시간단축에 들어간 점포들이 많은 상황이나, 지난해 7~9월만 해도 신바시, 아카사카, 긴자 등지에서는 심야 시간대에 술을 팔거나 자정을 넘겨 영업을 하는 곳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지원금은 챙기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곳들이 있었고, 행정당국도 '알고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여진다.
도쿄 주오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업주 B씨도 본지에 "세무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 2년간 영업시간 단축 협력 지원금 등으로 총 4000만엔(4억1560만원)정도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긴급사태 선언 기간 하루 6만엔(62만원)씩 한 달 간 180만엔(1870만원)을 수개월간 받았으며, 점포 월세 지원금을 별도로 받았다"고 설명했다.
방역 최고 단계인 긴급사태 선언은 지난해의 경우, 도쿄를 기준으로 1월~9월,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지속됐으며, 해제됐을 경우에도 만연방지 중점조치나 리바운드 방지 등의 조치가 내려졌다. 이 역시, 금액은 다소 줄긴 했어도 지원금은 계속 나왔다고 보면 된다.
현재는 비상조치 가운데 2단계에 속하는 만연방지 조치 기간(지난 1월 21일~2월 13일, 총 24일간)이다. 총 24일간, 영업시간을 오후 8시나 9시로 단축했다고 신고하면, 기존 매출액 기준으로 적게는 72만엔(750만원), 많게는 최대 480만엔(5000만원)까지 지급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영업시간 단축 보조금 외에 △주류 판매 제한에 따른 영업손실 보조금(매월 최대 40만엔, 415만원)△점포 월세 급부금(6개월간 100%) 등이 거의 매월 내지는 기간을 한정해서 지급됐다. 또 1회성으로 △사업부활지원금, 개인사업자 50만엔(약 520만원)·법인등록 사업주250만엔(2600만원) △소규모 사업자 지속화 보조금(1회성, 최대 100만엔·1040만원)등이다. 사업부활지원금, 지속화 보조금 등은 일반 중소기업도 대상이다. 이 밖에 종업원 당 하루 약 15만원이 지급되는 고용조정보조금, 테라스 좌석 설치 비용, 테이크아웃 출점 지원 보조금 300만엔(3130만원)등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갚지 않아도 되는' 급부금이란 점이다. 이것들은 전부 점포의 예이고, 점주 개인으로서도 자택 월세 지원금 등 별도의 긴급 코로나 지원들이 더 있다.
도쿄의 한 영세 중소기업 관계자는 "보조금들이 복잡하고 많은데다 매년 새로운 보조금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받을 수 있는 보조금들을 찾아내는 게 일"이라며 "세무사나 보조금 컨설팅 업체에 수수료를 주고 신청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 업체는 코로나 1년차인 지난 2020년, '갚을 필요가 없는' 지속화 급부금으로 200만엔(약 2087만원)을 받았고, 이후에도 텔레워크(재택근무 지원)보조금 등 뭉칫돈을 받아 직원들의 노트북 등 집기들을 교체했다. 이 관계자는 "고용을 유지하고, 세금을 내도록 일단, 살리고 보자는 것 같다"고 했다.
■두 갈래 정책 효과…"버틸 수 있었다"
막대한 '코로나 지원금 잔치'로 인한 정책적 결과는 두 갈래로 갈린다.
일단, 도산, 폐업을 막았다는 게 가장 크다. 이는 다시 고용 유지의 문제로 이어진다. 지난해 일본 전체로는 57년만에 도산 건수가 가장 적었고, 도쿄지역의 음식점만 놓고 봐도 도산 건수는 총 569건(전년비 27.1%감소)으로 2016년 이후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휴·폐업 등도 8.7%감소(총 494건)했다. 일본 전국기업재무제표분석 통계에 따르면 매출액의 며칠분을 현금예금으로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현 예금수지일수는 2019년 평균 44.8일에서 2020년 105.8일, 2021년 12월 시점엔 126.7일로 되레 증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위기시 체력이 약한 영세업자나 자영업자들에겐 코로나 지원금이 버팀목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A씨는 "코로나 지원금이 없었더라면, 한 마디로 죽었을 것"이라고 했고, 이보다 규모가 큰 점포를 운영하는 B씨 역시, "없었더라면 망했을 것"이라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외식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17개 외식업체들은 지난해 영업시간 단축 등의 지원금으로 약 2000억원을 계상했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7개사 중에 지원금이 없었더라면 적자를 봤을 기업들도 있었다"며 "보조금에 의존하는 구도가 장기화되고 있어 경영 규율을 해칠 위험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조금뿐만 아니라 대출 프로그램도 함께 가동됐다. 2년여간 정책금융과 시중은행의 코로나 대출 승인액도 약 55조엔(574조원)에 달한다. 점포나 기업들이 망하지 않고 버텨주니, 미쓰비시UFJ등 일본 5대 은행들의 실적도 호조세를 나타냈다. 물론, 현 시점에서의 얘기다. 제로금리 대출상품들의 원금 상환 시점이 도래하면, 도산 업체가 크게 증기할 것이란 경고도 만만치 않다.
■국가부채 '세계 최고'…"타이타닉호 같다"
음식점 중심의 자영업, 영세 기업을 중심으로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정리했지만, 중견기업이나 일반 대기업으로 가면 지원의 단위가 또 달라진다.
화수분처럼 자금이 풀리면서, 국가부채는 끝없이 증가하는 양상이다. 지난해 11월 당시 야노 코지 재무성 사무차관은 월간 '문예춘추'에 선심성 경제대책을 크게 비판하며, 일본의 국가 채무 상황에 대해 "타이타닉 호가 빙산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54.1%(2020년 기준), 1경2000조원을 넘어 세계 최고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분배 강화'로 전임 아베·스가 정권과 차별화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어, '돈 풀기'에 대한 유혹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문제는, 각종 보조금과 무이자 수준의 대출 프로그램으로 막대한 자금이 민간으로 유입은 됐으나 돈이 돌지 않고, 가계의 소비력이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SMBC 닛코증권은 지난해 4~6월 가계 전체에 35조~42조엔의 '과잉저축'이 있었으며, 이것이 일본 국내 수요 부족분 규모를 크게 웃돌았다고 분석했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주임 연구원은 "일본의 코로나 대책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한 조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으나, 선택적 급부가 아닌 사실상의 보편적 급부를 실시해 큰 폭의 재정지출 증가로 이어졌다"면서 "재정안정화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민생경제의 생존과 재정악화 사이에서 급한대로 돈 뿌리기로 '정책적 결단'을 한 것이나, 일본 경제가 브이(V)자 반등을 거듭하지 않는 한 재정악화는 쉽사리 수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