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사건이후 젠더갈등 누적 뚜렷…여가부 폐지공약도 불쏘시개
2022.04.11 06:02
수정 : 2022.04.25 17:45기사원문
(서울=뉴스1) 강수련 기자 = 젠더갈등은 세대갈등과 더불어 유난히 혐오단어가 많이 쓰여지는 갈등이다. 진영갈등이나 일터갈등처럼 그때그때의 갈등규모가 웅장하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성폭력이나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를 축으로 일상화된 갈등으로서 추세적으로 증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2019년 4분기 텔레그램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온라인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n번방 사건'이 공론화하면서 남녀 간의 입장 차는 '갈등' 일변도였다. 2030 청년들을 중심으로 '이대남'과 '이대녀' 갈등, '여혐·남혐' 이슈도 계속해서 불거졌다.
뉴스1과 빅데이터 전문 분석업체 타파크로스는 우리사회 갈등을 진영·젠더·세대·불평등·일터 등 5개 유형으로 나누고 지난 2018년 1월 1일부터 올해 3월 15일까지 총 4억4323만5993개의 언급량(버즈양)을 수집, 분석한뒤 개념적으로 정의한 산식에 따라 갈등지수를 산출했다. 직전 4개분기 평균치를 기준으로 해당분기 유형별 갈등 관련 총언급량 증감과 긍정언급량 대비 부정언급량 초과유입치 증감을 토대로 각 갈등별 분기별 증감지수를 산출한 다음, 이를 시기별로 합산해 누적지수를 작성했다.(2018년=100)
종합갈등지수는 다시 이들 5개 유형별 갈등지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출했다. 각 갈등에 대한 사람의 참여도와 상관없이 각 갈등이 사회에서 갖는 무게나 중요성은 같다고 가정한 데 따른 것이다. 해당분기 유형별 갈등관련 전체 언급량이 늘수록, 부정언급량이 긍정언급량을 초과해 많이 유입될 수록 갈등전선이 확산되고 갈등정도도 깊어지는 것으로 해석된다.(아래 개요 및 산식표 참조)
◇ 미투이후 눈에 띄게 강도가 줄다가 2020년3분기 '폭발'
한국사회에서 젠더 갈등의 언급량 비중은 전체의 14.7%로, 진영 갈등(64%)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2018년 성폭력 범죄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를 시작으로 혜화역의 페미니스트 시위, 2019년 n번방 사건 등을 겪으면서 젠더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사실상 '상수'로 자리잡았다.
추이면에서 미투가 많았던 2018년 이후 2019년 3분기까지 이슈가 소강상태를 보이며 갈등도도 눈에 띄게 잠잠해지다 n번방 사건이 터지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미투이후 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 n번방 같은 범죄사건이 나오며 남성에 대한 여성의 공격이 가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외에도 리얼돌 허용 논란,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둘러싼 논박, n번방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 등을 거치며 젠더갈등은 게속 증가했다.
수치 중 눈에 띄는 기간은 2020년 3분기다. 이간 추가된 젠더갈등은 14.0으로 당시 5개 갈등 유형중 일터갈등 다음으로 갈등유입이 많았다. 그 결과 누적기준 젠더갈등지수2020년 3분기 107로 다시 2018년 수준인 100을 넘었다.
당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젠더 갈등을 증폭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치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특히 미디어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다루는 비중이 늘어났다. 단순히 남녀 갈등이 아니라 성 정체성까지 포함하는 담론에서도 갈등이 확대된 것이다.
이 시기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일부 여성들에 대해 페미니즘을 골라서 쓴다는 '뷔페미즘' 등 비하 표현들도 많이 사용됐다.
이에 더해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사망 사건, 여성가족부 폐지 국회청원, 2020년 8월 웹툰 복학왕 여혐 논란까지 겹치면서 젠더 관련 부정적 언급은 더욱 늘었다. 타파크로스 관계자는 "당시 미디어에서도 성폭력 논란, 의혹 등의 표현을 쓰면서 부정적 지수로 집계됐고, 이 사건에 대한 반응 자체도 부정적 언급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사회에 갈등 잠재…소셜미디어상 격화가 특징
젠더 갈등 누적지수가 2020년 3분기이후 소폭 하락하고 추가로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누적지수가 100에 근접한 상태에서 오르내리는 것은 이전에 생긴 갈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옷한채 누적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8년 버닝썬 사건, 2019년 n번방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그때의 갈등이 강렬했기 때문에 현재 사회갈등지수가 낮아 보일 수 있다"며 "갈등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 갈등 자체가 줄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젠더 갈등은 세대갈등과 더불어 생활속의 갈등 성격이 강해서 뉴스미디어보다는 소셜 미디어상에서 논쟁이 계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미디어에서는 짧게 언급하고 끝나는 이슈도 소셜미디어에서는 꾸준히 언급량이 늘거나 반대 입장을 가진 네티즌과 논쟁을 각자가 속한 공간에서 지속하는 경향이 있다.
2020년 1~2분기에도 소셜미디어상 언급량은 계속 증가했다. n번방 범죄자 전원 신상공개 청원 등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이어지며, '잠재적 가해자'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갈등이 증폭됐다.
2021년 2~3분기에도 미디어와 달리 소셜미디어에서의 언급량이 늘었는데, '집게손가락' 모양이 남혐인지 여부를 두고 온라인상에서 논박이 크게 있었다. 또 '허버허버', '오조오억' 등의 단어가 남성혐오 표현인지를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허버허버', '오조오억' 단어는 여성 아나운서와 2020년 도쿄 올림픽 양궁 여자대표 안산 선수가 사용했다하여 댓글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페미니즘' 담론 자체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2021년 3분기에는 2030 남성들을 중심으로 뭉친 반여성주의 단체인 신남성연대와 그 대표가 운영중인 유튜브 채널이 영구정지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반발은 더 커졌다. 분석기간에 '안티페미, 안티페미니스트, 남성연대' 등의 표현이 많이 검색됐다.
◇정치권의 부채질…"공존 위한 논의 필요"
특히 정치권에서 20대 남성을 일컫는 '이대남'의 불만을 정치로 끌어들여 젠더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그것이다.2021년 7월 하태경, 유승민 후보가 먼저 공약했고 이어 윤석열 대통령 후보까지 계승됐다.
타파크로스 관계자는 "2022년 1분기에 '여성가족부 폐지' 자체에 관한 언급은 미디어에서 많았지만 소셜 미디어에서는 '1번남, 1번녀' '2번남, 2번녀' 등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진영 논리로 더 많이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 젠더갈등은 소수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나왔었는데 정치권에서 이를 이용해 갈등을 부추겼다"며 "정치권이 한쪽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말고 젠더갈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페미니즘 등 젠더 관련 담론이 진영 논리와 결합하면서 찬성·반대의 이분법적 갈등으로 더 크게 번졌다"며 "새 정부에서는 젠더 관련 정책, 제도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얼마나 필요한지 학계 등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젠더 문제는 당사자간 소통이나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정치권과 정부, 언론이 앞장서서 '공존'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