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유감(有感)

      2022.05.21 09:02   수정 : 2022.05.21 09:02기사원문
영화 '파친코' 갈무리(애플TV+) © 뉴스1


애플TV 파친코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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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 파친코 스틸컷 © 뉴스1


사진제공=애플tv © 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감독.© 뉴스1


[편집자주][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뉴스1) 김명준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사무총장·영화 '우리학교' 감독 = 복잡한 마음으로 읽고 복잡한 심정으로 드라마를 봤다. 소설 '파친코'와 애플의 드라마 '파친코'다.

주인공인 '재일동포' 당사자들의 '복잡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의 '조국' 또는 '고향'에서 태어났으며, 결코 짧지 않은 20년의 세월 동안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개입(?)해 온 나의 또 다른 '복잡함'이 있다.

먼저 밝혀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드라마는 1편에서 8편까지 시즌1을 모두 감상했지만 소설은 원고 마감에 쫓겨 1권만 읽었다. 따라서 이 글은 스스로도 자신 없는 그저 넋두리가 될 확률이 높다. 되도록이면 드라마와 소설 1권에서 드러난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이 결코 이민진 작가와 드라마 파친코 제작진의 의도 및 진심을 폄훼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음을 밝힌다. 둘은 모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작품이다. 결국 재일동포의 시린 아픔을 재미동포 이민진 작가가 알아봤다는 사실, 한편으로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다. 어쩌면 고향 사람 중에 하나인 나와 우리는 이 작품을 비판할 자격조차 없을지 모른다. 철저히 외면하면서 살아 온 세월을 생각하면 그렇다.

'이름들'

소설과 드라마의 주인공은 재일조선인이다. 그 뿌리는 경상도, 제주도, 평안도, 분단 전의 한반도다. 그런데 주인공 패밀리의 아들들이 죄다 요셉, 이삭, 노아, 모주스, 솔로몬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감상하면서 자꾸 덜컥덜컥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지점이었다. 이삭이 주인공 선자가 낳은 첫 아이의 이름을 형 요셉에게 지어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에서 살짝 기대를 했다. 이제 소설이 본 궤도, 즉 재일조선인의 삶을 리얼하게 다루지 않을까? 그런데 노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게다가 동생은 모주스다. 손자는 솔로몬. 평양의 양반댁 자제인 이삭과 요셉까지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는 좀 아쉬웠다.

본질적으로, 그리고 역사적 현실로서 재일조선인은 일본식 이름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걸 통명이라 한다. '명준'이라는 본명을 숨기고 사회적 통명으로 '아키라'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의 대표적 사례다. 사실 '노아'라는 이름은 그 자체로 본명과 통명을 똑같이 노아라는 발음으로 사용해도 괜찮다. 가령 한자로 野開(야개)라 쓰고 のあ(노아)로 발음한다고 자기를 소개하면 일본 사람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이한 이름이네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이 이름만으로 '앗! 재일조선인'이라 알아차릴 일본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그런데 노아는 노부코라는 일본식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본명인 노아, 솔로몬, 모주스는 재일조선인이 숨기는 본명으로는 낯설다는 뜻이다. 2세들의 본명(조선의 이름)은 대부분이 철수, 영철, 영희, 순이 같은 이름이다.

최근 재일조선인 4, 5세의 이름은 이런 경향이 강하다. 받침이 없는 이름, 세아, 세나, 아미 등등. 발음 그 자체로는 일본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이름에 죄다 받침을 빼는 선택을 했을까?

30년을 넘게 재일조선인을 연구하고 인터뷰해 만든 작품이라기엔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재일조선인에게 '이름'은 목숨과도 같은 것임을 작가도 잘 알 텐데 말이다. 기독교의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과 재일조선인의 이름을 '무리하게' 동일시한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복잡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둡기만 한 공동체

소설과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경'으로써의 '재일조선인 사회'는 어떤가? 암울하다. 차별과 멸시라는 외부의 암울뿐 아니라, 여기서 재일조선인 사회는 생존을 위해 인정사정없이 서로를 착취하고 견제하며 도둑질하는 사회다. 소설이 드라마보다 조금 더 심하다. 그나마 출산을 도와주는 옆집 아줌마나 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하는 조선인을 보며 오열하는 고한수 같은 설정이 이를 조금은 상쇄한다.

내가 만난 1세, 2세 동포들의 증언에 따르면 '재일조선인 공동체'는 가난하지만 밝았고 핍박을 받았지만 내부적으로 끈끈히 뭉쳐있던 사회라는 인상이었다. 밥을 굶는 동족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일본 아이들에게 구박당한 친구를 위해 동네 아이들 전부가 나서는 분위기였다. 자신을 지키기에 가족보다는 '공동체'가 더 큰 무기였고 자연스레 단결과 상부상조가 넘쳤다. 물론 '피와 뼈'에 등장하는 배경처럼 어두운 측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과 '드라마'는 그 특성상 2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 넣어야 하는 영화와는 다르다. 나는 소설과 드라마 '파친코'에서 핍박만 당해 늘 우울한 얼굴의 '가족'이 아니라 때로 웃고, 장난치고, 이웃과 정을 나누는 동포 사회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야 재일조선인 사회가 아픔을 견뎌낸 '영웅'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이웃이자 형제로 느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재일조선인은 혼자가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이 세월을 견뎌왔으니까.

증오의 부추김과 판타지

드라마에는 원작 소설에는 없는 몇 장면이 창작되었다. 가령 선자와 이삭의 도일 장면에서 어느 이름 모를 가수의 자결 장면이 그렇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늙은 일본 부호의 손이 그 조선인 여가수의 어깨를 만지고 그녀는 무대에 올라 고급 와인과 서양요리를 즐기는 일본인들을 위해 노래하다 갑자기 '판소리'를 노래하며 저항하는듯 하다. 배 가장 밑바닥의 조선 노동자들은 그 소리에 쿵쿵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판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박자였다) 여가수는 칼을 꺼내 자결한다. 그리고 시즌1이 끝날 때까지 이 장면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우리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더 이상 굴욕을 당하기 싫은 어느 여성 가수의 비참한 최후라고 막연히, 강제로 추론해야 한다. 슬퍼하거나 분노하라는 뜻인가?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어설픈 설득이다.

그런 장면이 제법 빈번하다. 부산의 시장 골목에 일본 순사가 나타나면 일제히 조용히 고개 숙이던 조선인들의 두려운 (한결같은) 얼굴이 그랬다. 식민지를 살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 우리에겐 너무 고전적이라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의상이나 세트, 로케이션에서 드러나는 치밀함을 곧바로 무너뜨리는 장면이었다. 제작진이 당시를 재현하는 방식이 너무 엄중해서 오히려 '판타지' 같았다.

또, 인물들의 대사는 영어 번역의 어려움이라 너그럽게 넘어가더라도 경상도 사투리의 자연스러움 (영어 원작에서는 불가능할)에 비해 넘치는 문어체에 당황해야 했다. 소설도 그렇지만 드라마는 이게 리얼리티를 깨고 감정이입을 자꾸 방해한다. 영어권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참으로 끈질기게 '자이니치조센진'(재일조선인) '조센진'(조선인)을 '한국인' '한국 사람'으로 번역한다. 엄연히 다른 의미고 달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친코'를 봐야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든 영화든 '파친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소설이 보여주는 재일조선인 3대에 걸친 장구한 삶에 대한 이해, 드라마의 수많은 오류와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묵직하게 느껴지는 애정 때문이다. 소위 '본토' '조국'에 사는 우리는 언제 한번 그런 걸 시도해 보기나 했을까? 부끄럽기 때문이다. 재미동포에게 재일동포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를 빼앗긴 우리의 영화제작자, 드라마제작자, 소설가들이 특히 더 봐야한다. (소설과 드라마, 둘다 재미동포의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게다가 드라마는 제작 자본이 무려 애플이다.) 선수를 빼앗기는 바람에 우리는 또 한번 부끄러운 조국, 고향 사람들이 되었다.


소설과 드라마 '파친코'를 보며 들었던 나의 복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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