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열면 담배연기, 닫으면 한증막" ...전기료 인상 추진에 걱정 늘어나는 쪽방촌
2022.06.23 17:16
수정 : 2022.06.24 16:4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요금 더오르면 에어컨 코드는 그냥 뽑아야죠."
폭염을 앞둔 취약계층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영등포, 돈의동 일대 쪽방촌 주민들은 비좁은 방에서 선풍기를 틀어도 요금에 부담이 커진다. 정부가 오는 3·4분기 전기·가스요금 인상을 고려하자 쪽방촌 주민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공공요금 인상에 생활고 걱정
서울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던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송금옥씨(73)는 전기요금 인상 소식을 접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단칸방이 내뿜는 열기를 피해 인근 공원에서 땀을 식히던 송씨는 "뉴스에서 전기요금 관련 소식을 듣고 '살기 더 힘들겠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여름만 되면 선풍기 틀기도 아까워서 밖에 나와 돌아다니며 더위를 피한다. 창문 없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밖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답했다.
이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최근 정부에 오는 3·4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9일 제1차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된 전기·가스요금은 자구노력을 통해 인상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공공요금이 인상되면 취약계층은 생활고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안분순씨(72)는 "겨울에 온풍기를 틀었더니 한 달에 13만원이 나오더라. 에어컨도 후원단체 도움으로 마련했는데, 전기요금이 더 오르면 올 여름엔 못 틀 것 같다"며 "방문을 열면 담배 연기가 들어오고, 닫으면 한증막이 된다"고 하소연 했다.
암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안씨의 경우 한달 수입은 50만원 남짓의 보조금이 전부다. 여기서 에어컨 가동으로 월 20만원 정도의 전기료가 추가로 나간다면 더위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생활은 더욱 궁핍해질 수밖에 없다. 이날도 안씨는 창문이 없는 6㎡ 남짓한 영등포 쪽방촌 방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에 지자체와 복지단체는 혹서기를 앞두고 무더위 쉼터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이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만난 70대 이모씨도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쉼터 대신에 집 앞 그늘을 선택했다고 했다. 이씨는 "쉼터는 좁기만 하고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무서워 가지 않는다"며 "선풍기가 있어도 집주인 눈치가 보여 틀지 못한다. (더위 피하기에) 집 앞 응달만한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지원단체도 공공요금 인상이 걱정
쪽방촌 주민을 돕는 인근 지원단체 역시 공공요금 인상에 부담을 느끼기는 매한가지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쪽방촌 주민 지원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들'의 임예은 방송국장은 "에어컨은 쓰지 않고 문을 열거나 선풍기만 틀고 있다. 너무 더울 때만 빼면 견뎌볼 것"이라며 "물가가 오른 만큼 더 아끼게 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봉명 돈의동주민협동회 간사는 "쪽방촌은 집주인에 월세를 내고 투숙하는 구조다. 에어컨 등을 사용하려면 전기료로 5만원을 더 내야 하는데 주민들에겐 그마저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간사는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이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부 기초수급을 받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을 하거나 요건이 되지 않아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쪽방촌 주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nodelay@fnnews.com 박지연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