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간첩죄

      2022.10.09 18:31   수정 : 2022.10.09 18:31기사원문
몇 년 전 삼성과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아몰레드)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사람들이 긴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았다.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대상기관에 손해를 가할 목적이 없다"는 이유였다. 법조문을 그대로 따른 판결이다.

당시 세계 아몰레드 시장 규모는 90조원으로, 기술유출은 크나큰 국가적 손실이었다.

국정원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 2월까지 집계된 산업기술 해외유출 사건은 99건이다.
적발된 것만 그렇다. 이 중 34건이 국가 핵심기술이었다. 3분의 2는 중국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와 관련한 보고서를 냈다. 같은 기간에 기소된 81건 중 28건(34.6%)이 무죄를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0%)보다 11.5배나 높다.

처벌이 관대한 첫째 이유는 느슨한 법 규정 때문이다. 다음은 수사력 부족, 수사와 기소의 분리 등 수사체계의 문제다. 검사들에게 생소한 전문분야이기도 한데 기록만 검토하는 기소 검사들이 재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고 한다. 법관들도 조문에만 얽매여 강화된 양형기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은 보잉사의 우주왕복선 자료를 가지고 있던 당시 74세 중국계 미국인에게 15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일본은 최근 기술유출을 막고자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했다.

기술유출을 가장 강력하게 처벌하는 국가는 대만이다. 지난 5월 대만 입법원은 국가 핵심관건기술 유출을 엄벌하는 '경제 간첩죄'를 법제화했다. 기술유출을 경제적 간첩(스파이)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국가 핵심관건기술은 유출될 경우 국가 안보·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기술로 정의됐다. 처벌도 1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2억원의 벌금으로 매우 엄하다.
중국 업체들이 인재를 빼가는가 하면 산업의 핵심기술을 훔쳐 경제안보에 위협이 됐다는 것이 배경이다. 우리도 사정이 다를 게 없다.
법 개정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고 기술유출을 다루는 정책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야 한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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