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시커멓게 변해, 빗물에 연탄도 쓸려가"…판자촌 '혹독한 겨울' 예고

      2022.10.18 14:58   수정 : 2022.10.18 14:58기사원문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주민이 연탄을 이용해 난방을 하고 있다. 2021.11.28/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지동 화훼마을 골목에 겨울을 대비해 마련한 연탄이 쌓여있다. 2022.10.18/뉴스1 ⓒ News1 손승환 기자


대구 북구 칠성시장에서 난전 상인이 생선을 손질하느라 꽁꽁 언 손을 연탄불에 녹이고 있다.

2021.1.19/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고려아연 임직원들과 대한적십자사 서울특별지사 봉사단원들이서울 노원구 희망촌에서 연탄 나눔 봉사를 하고 있다. 2019.10.29.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손승환 기자 = "연탄이 빗물에 많이 휩쓸려갔어. 그때 길이 시커멓게 변했었지."

18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장지동 판자촌 화훼마을에서 만난 최화순씨(81·여)는 수도권에 물폭탄이 쏟아진 지난 8월의 골목길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주민들이 겨울을 대비해 곳곳에 쌓아둔 연탄은 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태워보지도 못하고 녹아내린 연탄은 최씨 속처럼 동네 길가를 검게 물들었다.

가뜩이나 '금탄'이라 부를 정도로 연탄 구하기가 어려워진 상황에 겨울을 앞둔 주민들의 시름은 더 깊어졌다.
최씨는 붉어진 눈시울로 "그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난다"며 "(연탄이 부족하지만) 부족하다, 도와달라 말하기가 싫었다"고 말했다.

내륙 곳곳에 한파특보가 내려진 이날도 최씨는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에서 홀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기부받은 연탄은 아껴 쓰려고 한다"며 "힘들어도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맘때 연탄 30만장 가득했는데"…10분의 1로 급감

올 겨울은 저소득층 연탄가구에 유난히 혹독한 계절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연탄나눔 봉사활동은 뚝 끊겼고 경기 침체 여파로 기업과 개인의 후원도 10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저소득 가정 대부분이 연탄을 기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겨울나기에 비상이 걸렸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에 따르면 이달 전국 32개 연탄은행에 보관 중인 연탄 수는 약 3만장에 불과하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10월 대비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연탄은행은 기업 지원이나 후원금으로 마련한 연탄을 전국 각지에 보관하는 장소인데 지난 20여년과 비교해 올해는 유난히 빈자리가 크다. 코로나19 여파가 3년째 이어지는 데다 고물가와 경기침체 영향으로 봉사나 후원 심리까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허기복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는 "연탄봉사는 봉사자가 직접 현장에 와서 어려운 가정을 눈으로 보고, 본인이 후원한 연탄이 얼마나 소중히 쓰이는지 느끼면서 입소문이 난다"며 "코로나19 유행 이후 봉사활동 자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꾸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수·목욕물도 연탄으로 해결하는데"…한파 닥친 판자촌 '시름'

3년 전 10월과 비교해 이달 밥상공동체연탄은행 자원봉사자 수는 3000명에서 30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대면 봉사활동이 자취를 감춘 이유도 있지만 연탄봉사가 최근 기업 사회공헌활동 뒷순위로 밀려난 영향도 적지 않다. 가정용 연탄이 산업용 석탄처럼 대기 환경을 오염할 수 있다는 오해탓에 최근 기업들도 대체재를 찾거나 후원 활동을 망설인다는 후문이다.

코로나19 이전 매년 연탄나눔 활동을 진행한 한 기업 관계자는 "물가나 환율이 오르면 사회공헌사업 예산부터 감축하려는 심리가 크다"며 "너도나도 허리띠를 졸라매다 보니 나눔 활동도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국 연탄가구 수는 약 8만 가구로 추정된다. 서울에만 1650가구가 연탄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연탄사용 가정은 매년 9월 말부터 이듬해 4월까지 통상 1년에 7개월간 연탄이 필요하다. 한 가정이 7개월간 사용하는 연탄 수는 평균 1050장으로 추산된다.

연탄 1장당 소비자 가격(800원)으로 계산하면 매달 12만원이 드는 셈이다. 소비자 가격에 거리에 따라 운송비가 50원~150원씩 추가되는데, 저소득 가정이 개별 구매하기에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기관이나 기업 봉사나 후원 의존도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탄은 겨울철 저소득 가정 삶의 질과 직결돼 있다. 연탄가구는 가스·전기 보일러 설비가 부족한 고지대 달동네에 거주하는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연탄은 이들 가정에서 난방뿐만 아니라 물과 음식을 따뜻하게 가열하고 목욕, 빨래를 위한 온수를 만드는 역할까지 겨울 필수품 그 이상 역할을 한다.

올 여름 비 피해를 입은 화훼마을도 겨울을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마을에 거주하는 183가구 중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는 모두 27가구다. 화훼마을 주민 김모씨는 "이번 수해로 못 쓰는 연탄은 모두 버렸다"며 "연탄이 부족한데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남근 화훼마을 주민 대표(56)는 "연탄이 그동안 부족한 적이 없었는데 가구당 연탄이 최소 200장 정도, 총 5400장 정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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