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을 뒤집는 놀라운 혁신' 펜폴즈, 이번엔 나파밸리 와인 내놨다
2022.11.13 15:36
수정 : 2022.11.14 08:1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전통(Heritage)'과 '혁신(Innovation)'은 공존할 수 있을까. 이미 최고 자리에 올랐음에도 그 헤게모니에 안주하지 않고 밑바닥 DNA부터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천재'이거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일듯 하다. 호주의 국가문화재로 등재된 와이너리 '펜폴즈(Penfolds)' 이야기다.
펜폴즈는 영국인 의사 크리스토퍼 로손 펜폴즈(Christopher Rawsons Penfolds)가 1844년 창업한 와이너리다.
펜폴즈의 실험정신은 지난 2017년 10월 내놓은 'G3'와인만 봐도 알 수 있다. 펜폴즈의 최상위급 와인인 그랜지의 2008년, 2012년, 2014년 3개 빈티지를 섞어 만든 와인으로 전세계 와인 애호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한 병에 무려 3000달러의 가격임에도 1200병이 순식간에 다 팔렸다. 펜폴즈는 이번에는 미국 나파밸리에서 직접 고른 포도를 가지고 빚은 나파 와인 '빈 704 까베르네 소비뇽 2018(Bin 704 Cabernet Sauvignon 2018)'을 선보였다.
펜폴즈가 지난달 31일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펜폴즈 콜렉션 2022' 행사를 갖고 펜폴즈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을 소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펜폴즈가 첫 선을 보이는 빈 704 까베르네 소비뇽을 포함해 아이콘 와인 '그랜지 2018(Grange 2018)', '생 헨리 쉬라즈 2019(St Henri Shiraz 2019)', '빈 389 까베르네 쉬라즈 2020(Bin 389 Cabernet Shiraz 2020)', '빈 407 까베르네 소비뇽 2020(Bin 407 Cabernet Sauvignon 2020)', '야타나 샤도네이 2020(Yattana Chardonnay 2020)' 등 6가지가 소개됐다.
■와인은 역시 떼루아..빈 704, 빈 407 같은 까쇼인데 젼혀 다른 와인
빈 704 까베르네 소비뇽 2018은 미국 나파밸리 오크빌(Oakville) 등에서 자란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드는 와인으로 펜폴즈가 20년여간 연구한 끝에 2018 빈티지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나파밸리 특유의 실키한 질감이 인상적으로 호주에서 자란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남반구인 호주에서 자란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드는 빈 407의 숫자를 거꾸로 해서 명명했다. 펜폴즈 와인 메이커들이 직접 현지에 상주하며 포도 재배부터 와인 발효, 숙성, 병입 과정까지 모두 관여한다.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루비빛 와인으로 잔에서는 까베르네 특유의 향이 올라오는데 검은 과실 향이 굉장히 강하다. 밀도감 있게 출렁이는 진한 나파밸리 아로마다. 다크 초콜릿이 연상되는 향도 스쳐간다. 잔을 기울이면 두껍지만 부드럽게 사악 감기는 공단처럼 혀에 툭 떨어지는 진득한 질감이 일품이다. 혀를 진하게 발라버리는 아로마와 달리 산도도 높아 와인이 활기를 잃지 않는다. 타닌은 두껍지만 아주 부드럽다. 묵직하지만 유연하고, 발랄하지만 나대지 않는 독특한 매력의 와인이다.
빈 407 까베르네 소비뇽 2020은 호주 쿠나와라, 맥라렌 베일, 바로사 밸리 등에서 선별해 가져온 까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드는 와인이다. 빈 407은 맑은 루비빛으로 미디엄 질감을 예상케 한다. 잔에서는 까베르네 소비뇽 특유의 매콤한 향이 올라온다. 검붉은 과실과 약간의 카시스 향도 들어온다. 입에 넣어보면 아로마는 붉은 과실 쪽이 강하다. 질감은 미디엄 또는 미디엄 플러스 수준으로 무겁지 않으며 산도는 중상 정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질감이 무거워지며 산도도 높아진다. 타닌은 중간 정도로 강하지 않다.
■빈 389, 생 헨리..피니시를 끌고 가는 타닌 인상적
빈 389 까베르네 쉬라즈 2020은 '베이비 그랜지'로 불리는 와인이다. 맥라렌 베일, 바로사 밸리 등에서 난 까베르네 소비뇽 51%와 쉬라즈 49%를 섞어 만드는데 그랜지를 숙성한 배럴에서 숙성하기 때문이다. 와인은 쉬라즈가 블렌딩 돼 퍼플계열의 색을 띠며 아주 맑고 반짝거린다. 잔에서는 붉은색, 검은색 아로마가 같이 올라오며 매콤한 향도 스쳐간다. 삼나무와 시나몬, 감초 등의 향신료 향도 들어있다. 입에서는 외관과 다르게 밀도감 있는 질감과 두꺼운 타닌이 먼저 느껴진다. 아로마는 붉은색 과실이 주를 이루며 검은색 과실이 더해진 느낌이다. 산도는 중상 정도다. 피니시가 제법 길게 가는데 타닌에 묻은 초콜릿 향이 계속 이어진다.
생 헨리 쉬라즈 2019는 진한 보랏빛 색깔을 띤다. 전형적인 쉬라즈 색깔로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하다. 잔을 가까이 하면 붉은색 계열의 아로마를 보이며 감초 등 달치근한 향신료 향도 있다. 삼나무 등 시원한 느낌과 산도가 좋은 와인에서 나는 특유의 감칠맛 향도 있다. 입에 넣어보면 출렁댄다는 표현이 딱 떨어질 정도로 신선한 과즙이 쭈욱 들어온다. 질감은 의외로 풀바디보다는 미디엄 플러스 수준으로 무겁지 않으며 강한 산도가 아주 인상적이다. 타닌도 굉장히 두꺼우며 피니시도 아주 길게 가져간다.
■그랜지 2018, 경험못한 아로마와 타닌, 우아한 산도 일품
펜폴즈의 아이콘 와인으로 펜폴즈의 '멀티' 철학을 가장 잘 대변하는 와인이다. 바로사 밸리, 맥라렌 베일, 클레어 밸리 등 호주 전역에서 가장 좋은 포도를 골라 만든다. 쉬라즈 97%, 까베르네 소비뇽 3%의 블렌딩으로 알코올 도수는 14.5%다. 아메리칸 오크 호그헤드 배럴에서 18개월 간 숙성된 후 출시된다.
잔에 따라진 와인 색은 테두리에 살짝 비치는 보랏빛이 있지만 그냥 검은 진짜 잉크색이다. 잔에서는 카시스 향이 가장 먼저 반기는데 스모키 한 느낌의 졸인 검은 과실 향이다. 달콤한 감초 향도 언뜻 느껴진다. 입에 넣어보면 왜 그랜지가 전설적인 와인이라 평가받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아로마 자체가 다르다. 검은 과일 아로마가 제일 먼저 들어오는데 '고갱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처음부터 높게 들어와 은은하게 점점 치솟는 좋은 산도는 스모키한 타닌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질감은 잉크같은 와인 색과는 전혀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밀도감이 분명하게 느껴지는데 전혀 무겁지 않다. 미디엄에서 미디엄 플러스 어느 중간에 위치할 듯 하다. 아마도 와인이 진하지만 워낙 부드러워 그런 상반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피니시는 아주 길며 스모키한 타닌에 묻은 카시스 향이 계속 주도한다. 경험하기 힘든 부드러운 아로마와 좋은 산도, 스모키한 타닌이 그냥 일품이다.
■야타나 2020, 리치한 질감을 쨍한 산도가 발랄하게 만들어
야타나는 그랜지와 비견되는 펜폴즈를 상징하는 또 다른 와인이다. 1995년 처음 얼굴을 드러낸 야타나는 남극쪽에 가까운 태즈매니아, 애들레이드 힐스 등에서 나는 샤르도네(Chardonnay)로 만든다. 프렌치 오크 바리크에서 8개월 숙성한다. 잔에 따라진 야타나는 옅은 녹색이 감도는 볏집색이다. 잔을 가까이 하면 좋은 오크를 썼을때 나는 아주 고소한 향이 들어온다. 이어 흰꽃, 레몬, 감귤 등 서늘한 향과 브리오슈, 밀납, 너티한 향도 있어 굉장히 복합적인 아로마를 뿜어낸다. 입에 넣어보면 쨍한 산도가 기가막히게 좋다. 너티한 아로마와 리치한 질감의 와인을 고급스런 산도가 생동감 넘치는 발랄한 와인으로 만들어준다.
펜폴즈 와이너리 시니어 와인메이커 스테프 듀튼(Steph Dutton)은 "태즈매니아에서 가져온 포도는 날카로운 산도를 책임지며, 애들레이드 힐스의 포도는 과실 아로마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펜폴즈는 와인을 만들때 다양한 지역, 밭, 품종 등을 섞는 것이 독특한 철학"이라며 "그랜지와 생 헨리, 빈 389 등 와인들이 그런 혁신적인 철학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듀튼은 또 "펜폴즈 와이너리 담장 안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프로젝트와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며 "포도 재배, 양조 등에서 추구하는 놀라운 또 다른 혁신은 몇 년 내에 공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