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유가상한제 맞서 '그림자 유조선단' 100여척 꾸려"

      2022.12.04 04:54   수정 : 2022.12.04 04:5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러시아가 서방의 유가상한제를 우회하기 위해 '그림자 유조선단'을 꾸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유럽연합(EU) 27개국은 2일 러시아 석유수입을 금지하는 5일부터 러시아가 해외에 수출하는 석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유가상한제에 합의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까지 이에 동참하기로 해 배럴당 60달러가 넘는 러시아 석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은 로이드를 비롯해 영국과 EU 등에 본사가 있는 보험사들의 선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러, 유조선 100여척 확보

그러나 해운중개업체, 애널리스트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자국 석유 운송을 위해 이미 자체적으로 유조선 100여척을 준비했다.

해운중개업체 브레이머(Braemar)는 자국 석유 운반을 주로 외국 유조선에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가 올해 유조선 100여척을 확보했다고 추산했다.
러시아가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들 유조선을 사들였다는 것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리스타드도 러시아가 올해 유조선 103척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유조선을 직접 사들이거나, 이란, 베네수엘라 등 현재 서방의 석유 엠바고에 놓여 있는 두 나라 석유를 실어 나르는 유조선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103척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림자 유조선단

석유 해운업계에서는 러시아가 확보한 이들 유조선을 '그림자 유조선단'이라고 부르고 있다.

러시아가 이 그림자 유조선단을 동원해 유가상한제를 지키지 않고도 자국 석유 수출이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그러나 중개인들은 그림자 유조선단이 유가상한제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이를 완전히 우회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익명으로 은밀하게 구입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조선 업계에서 최근 대규모의 익명 구매가 급격히 늘어났다. 익명으로 사거나 구매 주체가 공개됐다고 해도 업계에는 생소한 새 바이어가 유조선들을 쓸어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레이머의 유조선 분석 책임자인 아눕 싱은 현재 이렇게 팔리는 유조선들은 대개 건조된 지 12~15년된 유조선들로 수년 안에 고철 신세가 되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싱은 이 바이어들은 업계에 생소한 이들이라면서 대부분이 러시아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브레이머는 지난달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러시아와 연관된 운영사들이 올해 초대형 유조선 VLCC 29척을 구입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보고한 바 있다. VLCC는 한 대가 석유 200만배럴 이상을 운반할 수 있다.

브레이머에 따르면 러시아는 또 수에즈맥스급 유조선 31척, 아프라맥스급 유조선 49척도 인수한 것으로 의심된다.

수에즈맥스급 유조선은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용량 유조선으로 약 100만배럴을 운반할 수 있고, 아프라맥스급은 약 70만배럴의 석유를 실을 수 있다.

그래도 부족

러시아가 그림자 유조선단을 꾸렸다고는 하지만 이것 만으로 석유선적이 충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러시아가 내년 초에는 올해 석유 수출 규모 만큼을 수출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결국 유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하버드대 데이비드센터의 러시아 석유 전문가인 크레이그 케네디는 러시아가 지금보다 더 많은 유조선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으로 수출하던 석유를 아시아의 새 바이어를 찾아 수출해야 하기 때문에 유조선이 더 먼 길을 가야 하고, 그만큼 항해 기간이 길어지면서 석유를 싣고 떠난 유조선이 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탓이다.

리스타드는 러시아 유조선 부족 규모가 60~70척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리스타드 애널리스트 빅토르 쿠릴로프는 "러시아가 지금의 수출 물량을 유지하려면 유조선이 240여척은 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석유 부족
부족한 러시아 유조선 규모는 세계 석유 부족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케네디는 내년 2월 EU가 러시아 석유제품 수입까지 금지하면 석유부족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석유공급이 얼마나 줄어들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제각각이다.

리스타드는 하루 약 20만배럴 공급이 줄 것으로 예상한 반면 브레이머는 감소 규모가 하루 70만~15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러시아는 3일 EU와 서방의 유가상한제를 수용하지 않겠다면서 석유 공급을 줄여 유럽이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위협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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