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산업기술, 5년간 112건 해외로 샜다
2023.01.03 18:34
수정 : 2023.01.03 18:34기사원문
#2.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B씨는 자율주행차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3. 기술을 유출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어도 유죄라는 법원 판단도 있다.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서 군 잠수함 관련 설계 및 개발업무를 담당했던 C씨는 취득한 설계도면, 부품리스트 및 제작방법 등 자료 4216개를 허락 없이 개인 노트북 등에 저장했다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그가 1년 넘게 보관한 자료 중에는 회사가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 시도한 기술도 있었다.
기업이 오랫동안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개발한 신기술을 빼돌리는 기술유출 범죄가 날이 갈수록 기승이다. 그럼에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고, 기술유출 혐의로 법정에 선 이들의 변명은 천태만상이다. 이직 약속을 받고 기술을 몰래 빼돌린 것부터 아무 생각 없이 퇴사할 때 가지고 나온 자료에 그 회사가 최초 개발한 기술이나 최대 비밀기술이 담겨 있기도 하다. 대기업 전직 직원들과 손잡고 빼낸 기술로 자신들이 제품을 개발해 수출한 사례도 있다. 어떤 이들은 수첩을 잃어버렸는데 그게 유출경로가 됐다는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3일 대검찰청이 공개한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따른 피해예상액(추산)은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총 26조931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기술유출 사건은 수법이 치밀하고 은밀해 증거 확보가 쉽지 않아 밝혀내지 못한 범죄가 많고, 어떤 핵심기술 등은 시장거래 가격을 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실제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의 해외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검의 산업기술 해외유출 적발건수를 보면 2017년부터 2022년 9월까지 최근 약 5년간 총 112건으로 집계됐다. 그중에서 국가핵심기술 유출사건도 36건에 달한다. 112건 중 중소기업이 68건, 대기업 35건, 대학과 연구소 등이 9건으로 중소기업이 다수였지만 국가핵심기술로 좁혀보면 대기업이 22건, 중소기업 11건, 대학과 연구소 등이 3건으로 대기업이 많다. 분야별로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가 각각 26건과 24건으로 가장 많았다.
2022년 검찰에 적발된 기술유출 사건도 상당수다. 삼성전자 반도체부품(DS)부문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직원이 반도체 핵심기술 등 내부 기밀을 외부로 유출하려다 적발됐고, 또 다른 삼성전자 직원은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로 기술유출을 시도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첨단기술의 중요도에 따라 기술유출로 인한 기업의 타격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법원 판결은 이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높다.
휴대폰 제작 공정에서 적용되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톱텍 관계자들은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쟁사의 이직을 약속받고 근무하던 에릭슨엘지의 영업비밀을 무단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던 화웨이코리아 임원 역시 1심에서 집행유예가 나왔지만, 2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실제로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관련 법원의 판결은 1심 재판 81건 중 집행유예가 39.5%로 가장 많았고 벌금 등의 재산형은 8.6%, 무죄도 34.6%였다.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6.2%에 그쳤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