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워크맨처럼 될라"…전기차시대, 고객 마음 못읽은 日의 탄식
2023.01.26 05:00
수정 : 2023.01.26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전동화시대를 맞아 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 일본차의 지위가 불안하다.
일본차가 전기차 시장에서 동떨어져 있는 사이, 중국차는 전기차를 앞세워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 자동차 수출대국에 올랐다. 시장의 판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
"하이브리드차야 말로 고난이도의 좋은 차"라는 일본차 메이커들의 믿음과 달리, 소비자들은 이미 유지비가 싼 전기차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3·4분기까지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4%감소했지만 순수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80% 늘며,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흐름은 이미 전기차로 향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고수, 대붕괴 시작" 경고음
일본 3대 시사주간지 주간현대(슈칸겐다이)는 최신호에서 자동차 전문 평론가 이노우에 히사오가 쓴 '도요타가 세계 최고에서 추락, 일본 자동차 산업의 위험한 대붕괴가 시작된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주간현대는 "세계 자동차 시장의 대세는 이제 전기차인데,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해외 기업들에) 뒤처진 상황을 되돌려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중국차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질타했다. 내부 각성을 촉구하며 '대붕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인데, 일본 산업계 내부에서도 위기에 대한 체감지수가 매우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일본 차업계에선 5개의 크고 작은 충격이 연이어 가해졌다.
우선 지난해 현대차 아이오닉5의 일본 시장 진출이다. 일본 자동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테슬라 따라하기' 정도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두 번째 충격은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이 도요타 보다 8배라는 점이었고, 연말 미국 완성차 거물인 제너럴 모터스(GM)가 도요타를 제치고 미국 판매 시장 1위를 탈환했다는 비보가 세번째 충격을 가했다.
곧이어 일본 자동차 내수 시장(420만대)이 인도(425만대)에 밀리며 4위로 내려앉은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동안 무시했던 중국차가 일본 안방을 치고 들어오더니 급기야 세계 자동차 수출 2위 대국에 오른 것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과거 소니의 워크맨처럼 쇠락의 길로 접어들 수 밖에 없다. 이노우에 평론가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가장 큰 약점이 이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전기차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이 총제적으로 낙후돼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것"이라고 통탄했다.
최근까지도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만나 "하이브리드카의 친환경성을 국제 무대에서 강조해 달라"고 읍소하기까지 했다.
GM, BMW, 폭스바겐그룹, 볼보 등이 앞다퉈 전동화 체제로 전환을 선언할 당시, 하이브리드카 등 내연기관차의 유지를 주장한 것이다. 내놓은 전기차도 변변치 않다. 도요타가 지난해 출시한 첫 전기차 'bZ4X'는 주행중 바퀴 이탈 가능성 때문에 한 달 만에 전량 리콜을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닛산 사쿠라 등은 일본 내수용 경차다. 맏형 도요타의 역질주 속에 그나마 소니 혼다 모빌리티가 최근 미국 CES에서 전기차 콘셉트가 '아필라'를 보이며, 체면을 세운 정도다.
전기차로 세계 휩쓴 中, 독일 제치고 수출 2위
일본차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중국차의 약진이다.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 수출을 앞세워 공격적으로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선 결과다. 한국 자동차 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54.4%성장한 311만대를 수출했다. 지금까지 2위였던 독일(261만대)을 가볍게 제치고, 일본을 턱밑에서 추격하고 있다. 일본차는 지난해 11월까지 누적 320만대 정도를 수출하며 1위를 확정한 가운데 한국은 잠정 230만대로 6위로 예상된다.
과거 5년 간 100만대 수준이었던 중국의 자동차 수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중국 정부의 전기차 육성 전략이 주효했다.
'신에너지차'로 부르는 친환경차(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수소전기차)의 수출이 120% 늘어난 68만대로, 전체 성장을 견인했다. 중국 토종 자동차 기업의 약진 속에 테슬라 덕도 컸다. 중국 전기차 수출 중 약 절반은 테슬라 상하이 공장(기가팩토리)에서 만들어 수출한 것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테슬라 수출 차량은 9만7182대였다. 토종 기업 비야디(BYD)의 '한'·'송 플러스', 우링의 '홍광미니' 등 지난해 5월 기준 세계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 중 7개가 중국 브랜드의 모델이었다. 수출시장도 벨기에, 칠레, 호주, 영국, 사우디아라비아로 다변화 됐다. 이 중 전기차 수출은 70%가 영국, 벨기에 등 유럽시장이다. 중국 BYD는 최근 미국 포드의 독일 생산공장을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달 말에는 일본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다.
S&P 글로벌모빌리티는 "지난해 전기차를 선택한 소비자들은 대개 도요타나 혼다의 기존 고객이었다"면서 "일본 기업들은 내연기관차를 몰았던 자기 고객들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