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韓정부 배상책임 첫 인정…法 "명백한 불법행위"(종합)

      2023.02.07 16:40   수정 : 2023.02.07 16:5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응우옌씨에게 3000만 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 지급을 판결했다.



응우옌 티탄씨는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2월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서 70여명의 민간인을 학살했고, 그 사건에서 가족들을 잃고 자신도 총격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3000만 100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수십년이 지난 사건인 만큼, 재판에서는 우리 군의 학살이 실재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사실 확인을 위해 지난해 8월 증인신문 과정에서 베트남 전쟁 당시 민병대 소속이었던 응우옌 득쩌이씨(83)가 직접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보고 있고 총을 쐈다. 마을 주민들이 쓰러지고 수류탄을 던졌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반면 정부는 한국군에 의한 피해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설령 불법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를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법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 자체가 소멸됐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응우옌씨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당시 해병 제2여단 1중대 군인들이 작전 수행 중 원고 가족들로 하여금 방공호 밖으로 나오라고 한 뒤 이들이 밖으로 나오자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다.

이어 "원고 모친은 외출 중이었는데 이 사건 소속 군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 곳으로 강제로 모이게 한 다음 그 곳에서 총으로 사살한 사실도 인정할 수 있다"며 "이 같은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베트남과 한국, 미국 간의 약정서 등에 따라 베트남인이 한국 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정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군사 당국 및 기관 간의 약정서는 합의에 불과하다"며 "베트남 국민 개인인 원고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청구권을 막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결론냈다.

게릴라전으로 전개된 베트남전 특성상 정당행위였고, 소멸시효가 만료됐다는 정부 주장도 배척했다.

재판부는 "정부가 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며 "원고의 상황이 객관적으로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판결 직후, 응우옌 티탄씨는 화상 연결을 통해 "퐁니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74명의 영혼에게 오늘의 기쁜 소식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을 주민들에게 소식을 나누고 알리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대리인단은 이번 선고가 "대한민국의 공식 기구가 최초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위로문과 사과문을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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