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열증(熱症)에 도사의 말대로 OO를 먹었더니 저절로 회복되었다
2023.02.11 06:00
수정 : 2023.02.11 06:00기사원문
먼 옛날 어느 한 선비가 병에 걸렸다. 선비는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았고 항상 노심초사하며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선비는 마을의 의원을 찾았다.
의원이 진찰을 해 보더니 “당신은 지금 열증(熱症)이 극심하고 이미 기혈(氣血)까지 쇠해 있으니 3년 뒤에 저(疽)에 걸려 죽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저(疽)는 악성 종기인 옹저(癰疽)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 당시 옹저에 걸리면 죽는 사람이 많았다.
선비는 걱정스러워하며 “그럼 처방을 좀 해 주시구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의서만을 이곳저곳 뒤적거리더니 결국 의서를 덮고서는 “당신의 병에는 약이 없소.”라고 했다.
아마도 처방을 해 봤자 효과가 나지 않아 책망을 들을 것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약방을 가 봐도 마찬가지 소리를 들을 것이요.”라는 것이었다.
의원은 선비가 마치 불치병에 걸린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선비는 슬퍼하면서 약방을 떠났다.
‘내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분명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밥 생각은 전혀 없었고 글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 대청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는 선비를 보고서는, 부인이 “서방님, 제가 듣기로 저기 모산(茅山)에 한 도사님의 의술이 신통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사님은 자신의 의술을 자랑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 또한 믿을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혹시 압니까. 도사님이 살 수 있는 좋은 처방을 알려주실지 말입니다.”하는 것이다.
선비는 부인의 말을 듣고서는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도사가 있다는 모산으로 향했다. 사서삼경 등 책도 없이 그냥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떠났다. 생각에 한 1년 정도 요양도 할 생각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싱숭생숭해서 모든 것을 잊고 속세를 잠시 떠나 있어야겠다고 여긴 것이다.
모산에 도착한 선비는 깊은 산속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누가 봐도 도사처럼 보였다.
선비는 노인에게 대뜸 큰 절을 하고서는 “어르신, 저는 잠시 세속의 욕심을 버리고 이곳에 왔습니다. 잠시 머물게 해 주시면 제가 나무도 하고 물도 길어 오는 것으로 삯을 지불하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했다.
선비는 자신의 몸이 병들어 왔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노인은 선비의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올 사람이 왔구나’하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하게나. 구름처럼 머물다 바람이 불면 언제라도 떠나가면 될 걸세.”라면서 허락했다.
선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오두막 마당을 쓸고 아침 밥을 먹은 후 오전에는 땔감을 구해오고 오후에는 계곡까지 가서 물을 길어 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멍하니 앉아 명상도 했다. 마치 수행을 하듯이 하루 하루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이렇게 1달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처음 왔을 때에 비해서 많이 편해졌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여전히 예전의 증세가 불현듯 나타나기에 ‘3년 뒤에 저(疽)에 걸러 죽을 것이다’라는 의원이 말이 귓가에 맴돌아 그 불안한 잡념은 떠나지 않아 잠을 자는데 뒤척이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날 노인이 물었다. “자네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하기에 오매불망하는가? 아직도 세속의 욕심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원래 병자입니다. 그런데 제 병이 불치병인 것을 알고 이렇게 어르신을 찾아뵌 것입니다. 그런데 차마 제 병을 말씀드리지 못했을 뿐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증상과 함께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노인은 진맥을 해 보고서는 웃으며 말하기를 “자네는 당장 하산하도록 하게나. 그리고 집에 가거든 날마다 크고 단 좋은 생 배 1개씩 먹도록 하게. 그리고 생 배를 잘라서 잘 말려 놓도록 하게나. 생 배를 다 먹어서 없으면 말린 배를 뜨거운 물에 불렸다가 짜내어 찌꺼기를 먹고 즙을 마시면 자네의 병은 저절로 회복될 것이네”라고 하는 것이다.
선비는 자신의 병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그깟 배를 먹어서 좋아질 것이라니 어이도 없고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산에서의 생활이 한 달 남짓이지만 노인의 행동이나 면모를 보아서 그 말은 허튼소리가 아님을 직감했다. 선비는 노인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하산을 했다. 사실 1년을 요양할 요량으로 왔지만 원래의 목적인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기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선비는 노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산을 내려왔다.
선비는 노인의 말대로 날마다 생 배를 한 개씩 정성껏 챙겨 먹었다. 또한 욕심을 버리고 무념무상하게 하루 하루를 지내려고 노력했다. 너무 맵거나 기름진 음식도 줄였다. 노인의 말대로 1년 정도 시간이 흘렀다. 몸은 점차 좋아지는 듯했고 열감과 피로감도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3년 뒤에 죽을 거라는 의원이 생각났다. 아직도 자신의 병이 심각한지 다시 진찰을 받아 볼 생각이었다.
선비는 약방에 도착했다. 그런데 선비의 얼굴을 본 의원은 깜짝 놀랐다. 선비의 얼굴은 살이 찌고 초췌함이 사라지고 윤택해졌기 때문이었다. 의원은 놀람을 뒤로 하고 진맥을 했다. 맥 또한 완맥(緩脈)으로 화평했다. 완전하게 건강을 회복한 듯 했다. 의원은 놀라며 물었다.
“자네는 반드시 불세출의 명의(名醫)을 만난 것이 분명하네.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이렇게 빨리 병세가 나아질 수 있단 말인가?”하고 놀랐다.
의원은 이 선비가 필시 누군가로부터 비방(祕方)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선비는 자신의 병이 모두 회복이 되었다는 말에 기뻐하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러고서는 “그 모산의 도사가 저에게 먹으라고 했던 것은 한낱 하루 생 배 한 개뿐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화들짝 놀라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자신은 의서를 여기저기 뒤적거려도 적절한 처방을 찾지 못했는데, 그리고 그 비방이 단지 배라니. 배만으로 이렇게 치료했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의서에서는 ‘배는 약에 넣지 않는다’고 나와 있기도 해서 약이 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배 이외에 선비가 눈치채지 못했던 특별한 비법이 더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비가 떠난 후, 의원은 자신의 의술이 미천함을 원통해 하며 옷과 의관을 챙겨 입고 선비가 말한 모산을 찾았다.
노인을 발견한 의원은 큰 절을 올리며 “저는 일찍이 도사님께서 비방(祕方)을 전해주셨던 한 선비에게서 듣고서 이렇게 무례함을 무릅쓰고 도사님을 찾아뵀습니다. 그 선비에게 저는 불치라고 했거늘 벌써 이렇게 건강을 모두 회복한 것을 보면 도사님이 알려 주신 비법(秘法)이 약이 된 듯합니다. 부디 의술이 미천한 의생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다.
의원이 ‘배’라는 단어는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의원의 얼굴을 한참 보고서는 절실함이 느껴졌는지 노인은 말을 꺼냈다.
“대체로 옛사람들은 병을 논할 때 외감(外感)으로는 주로 풍한(風寒)을 논하기 때문에 계지나 마황과 같은 신랄(辛辣)한 약들과 냉(冷)을 제거하고 몸을 보한다고 해서 부자나 인삼과 같은 열한 약들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병이 아니라 도리어 약 때문에 몸에 열독이 쌓이는 것이 문제요. 그래서 요즘 옹저나 등창 환자들이 많이 늘어난 것이지요. 세속의 의원들은 모든 문제를 약으로만 해결하려고 하지만, 주위에 보면 약이 되는 식품도 많이 있소이다. 생 배 또한 풍열을 치료하고 폐를 촉촉하게 하면서 심화(心火)를 서늘하게 하고 담(痰)을 삭이고 화(火)를 내리며 독(毒)을 풀어주는 효능에 있지만 의원들은 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소이다. 지난번의 선비처럼 요즘 사람들의 병의 원인을 보면 잘 먹고 신경을 쓰는 일들이 많아 담병(痰病)과 화병(火病)이 열에 예닐곱이니 이때는 생 배가 약이 아니고 무엇이겠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노인은 대뜸 “혹시 배를 한자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오?”하고 물었다.
의원은 다 아는 걸 물어본다는 투로 “배는 한자로 이자(梨子)라고 하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다면 과거 선인들은 왜 배를 이자(梨子)라고 이름 지었겠습니까?”하고 다시 물었다. 의원은 당황해하며 답을 못했다.
노인은 “이(梨)에는 ‘소통하고 이롭다’는 리(利) 자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배의 이로움이 적지 않지만 성질이 서늘해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지 말아야 할 따름이요.”라고 했다.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혹시 배 이외에 다른 비법은 없었습니까?”하고 물었다.
노인은 “껄껄껄~” 웃으며 “의원양반, 당신도 하산하면 오늘부터 생 배를 먹어야 하겠소. 당신의 의구심이 화병(火病)으로 바뀔까 걱정이요.”하는 것이다.
의원은 얼굴이 붉어졌다 ‘오로지 배 뿐이었구나.’ 환자를 진찰할 때면 낫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지 약성이 강하고 독한 처방만을 찾고 오랫동안 복용해야 한다고만 강조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의원은 오늘에서야 ‘아무리 심한 중병이라도 병증에만 적중한다면 하찮은 배조차도 선약(仙藥)이 될 수도 있구나.’하고 깨달았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 별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제목의 ○○는 ‘생배’입니다.
■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본초강목> ○ 按類編云, 一士人狀若有疾, 厭厭無聊, 往謁楊吉老診之. 楊曰, 君熱證已極, 氣血消鑠, 此去三年, 當以疽死. 士人不樂而去. 聞茅山有道士醫術通神, 而不欲自鳴. 乃衣仆衣, 詣山拜之, 願執薪水之役. 道士留置弟子中. 久之以實白道士. 道士診之, 笑曰, 汝便下山, 但日日吃好梨一顆. 如生梨已盡, 則取乾者泡湯, 食滓飮汁, 疾自當平. 士人如其戒, 經一歲復見吉老. 見其顔貌腴澤, 脈息和平, 驚曰, 君必遇異人, 不然豈有痊理? 士人備告吉老. 吉老具衣冠望茅山設拜, 自咎其學之未至. (유편에 이르기를 어떤 선비가 질병에 걸린 듯이 매우 피곤하여 양길로를 찾아가 진찰을 받았다. 양길로가 말하기를 “그대는 열증이 이미 극심하여 기혈이 사그라들었으니, 3년 뒤에는 저에 걸려 죽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비는 슬퍼하며 떠났다. 모산에 있는 어떤 도사가 의술이 신통하지만 스스로 자랑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곧 옷을 바꿔 입고 산에 가서 도사에게 절을 하고는 땔감을 메고 물을 길어 오는 일을 하겠다고 청하였다. 도사는 제자를 사는 곳에 머물게 하였다. 시간이 지나자 선비가 도사에게 사실대로 말하였고, 도사가 진찰하고는 웃으며 이르기를 “너는 당장 하산하라. 다만 날마다 좋은 배 1개씩 먹으라. 생 배를 다 먹어서 없으면 마른 것을 뜨거운 물에 불렸다가 짜내어 찌꺼기를 먹고 즙을 마시면 병은 저절로 회복된다.”라고 하였다. 선비가 그 경계하는 말을 지키고서 1년이 지나 다시 양길로에게 찾아갔다. 선비의 얼굴이 살찌고 윤택한 것을 보고 맥이 화평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놀라서 말하기를 “그대는 반드시 기이한 사람을 만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병이 나아질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하자, 선비는 양길로에게 내용을 갖추어 말하였다. 양길로가 옷과 의관을 입고 모산을 향해 절하고는 학문이 이르지 못함을 스스로 꾸짖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 時珍曰 別錄著梨, 只言其害, 不著其功. 陶隱居言梨不入藥. 蓋古人論病多主風寒, 用藥皆是桂ㆍ附, 故不知梨有治風熱ㆍ潤肺涼心ㆍ消痰降火ㆍ解毒之功也. 今人痰病ㆍ火病, 十居六七. 梨之有益, 蓋不爲少, 但不宜過食爾. (이시진이 말하기를 “명의별록에 기록된 배는 그 해로움만 말하였지 효능은 기록하지 않았다. 도홍경은 ‘배는 약에 넣지 않는다.’라고 말하였다. 대체로 옛사람들은 병을 논할 때 풍한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쓰는 약은 모두 계지와 부자였으므로 배가 풍열을 치료하고, 페를 자윤하고 심을 서늘하게 하며, 담을 삭이고 화를 내리며, 독을 풀어 주는 효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담병과 화병이 열에 예닐곱이다. 배의 유익함은 적지 않지만 많이 먹지 말아야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