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완화보다 정착이 먼저"
2023.03.06 18:25
수정 : 2023.03.06 18:25기사원문
나철호 재정회계법인 대표이사(사진)는 "새 정부 들어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위기를 맞았다"고 진단하며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해 필수적인 제도로, 근본 틀을 바꾸는 작업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그 연장선에서 최근 거론되는 '9+3'이나 '6+2'로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서 역시 제도가 안착되기도 전에 변경을 논하기는 이르다는 판단이다.
나 대표는 "외부감사인은 기업 재무제표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소신에 따라 감사의견을 표명할 책임을 지닌다"며 "하지만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실시되기 전엔 이해관계로 얽힌 탓에 이 소명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악순환에 따른 회계품질 저하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걸쳐 건전성을 갉아먹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촉발한 국가 신뢰도 저하 요인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나 대표는 소유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고유의 기업 지배구조하에서 감사인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시작이자 마지막 보루가 2020년 주기적 지정제라고 판단했다. 국내 기업들의 거버넌스 문제가 여전한데 감사 강도만 느슨하게 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재계 반발은 거세다. 개별 기업을 넘어 기업단체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금융위원회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폐지해달라는 의견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착관계 방지 등 독립성 강화에 치중돼 감사품질이 떨어지고 기업 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나 대표는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편승해 감사보수가 높아지고 절차가 엄격해져 기업경영이 힘들다는 명분을 내세운 제도 폐지 주장도 있다"며 "그러나 감사보수 인상은 제대로 된 감사 수행을 위해 요구되는 감사시간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맞받았다.
그는 이어 "감사보수는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발걸음을 뗐을 뿐이며,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되레 하락한 상황"이라며 "주요 외국 사례와 비교해도 여전히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 대표는 "충분한 감사시간을 투입하는 동시에 감사품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회계사 교육훈련과 내부 품질관리에 힘써야 할 것"이라며 "회계법인끼리도 보수가 아닌 품질 경쟁을 벌여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나 대표는 감사인 '갑질' 문제가 일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봐주길 당부했다. 감사환경이 달라진 만큼 어느 절차 하나 허투루 처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감사인은 감사 대상회사를 위한 재무제표 작성, 회계처리 자문 등이 금지되는 등 과거보다 강화된 독립성이 요구되고 있다"며 "자칫 잘못할 경우 구속은 물론 무기징역까지 감당해야 하는 만큼 어느 때보다 감사 리스크가 높기 때문에 세세히 점검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