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IRA법' 미국 재판되지 않도록 선제 대응해야

      2023.03.10 15:30   수정 : 2023.03.10 15:3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유럽연합(EU)이 제정한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과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이 가져올 파장에 국내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가져온 후폭풍과 유사한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오는 14일(현지시간) 두 법안의 초안을 각각 공개할 예정이다.

EU가 준비중인 탄소중립산업법은 오는 2030년까지 저탄소 관련 제조 역량을 연간 수요의 최소 4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친환경산업의 주도권을 미국이나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보조금도 높이고 지원 절차도 간소화하는 방식이다.
EU 기업들뿐만 아니라 이곳에 진출한 역외 기업들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유럽시장에 진출한 우리나라 배터리 3사와 완성차 업체의 경우 보조금 지원 등 혜택을 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감내해야 할 변수가 산적해 있다. 핵심원자재법이 문제다. 이 법은 유럽연합 내에서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확보하고 다각화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초안에는 '전략 원자재' 연간 수요의 10%를 역내에서 채굴하고, 가공과 재활용 역량은 각각 40%,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법은 중국산 친환경 원자재가 유럽에 유입되는 걸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깔고 있다.

EU의 셈법이 한국산 제품 수출에 치명타를 가져올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수출하는 제품에 중국산 원자재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어서다. EU에서 발표할 조항들이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적용될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유럽연합의 친환경 관련 두 가지 경제입법이 미국의 IRA와 빼닮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일면 호혜적으로 보이는 보조금 정책이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통 큰 보조금을 약속했던 미국이 미국 본토에 공장을 지은 한국 기업들에게 이익을 공유하자고 나서는 행태의 재연이 걱정된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 보조금을 받기 위해 현지 공장 건설로 선회한 대가로 국내 산업 공동화와 내수 노동시장 악화를 낳은 점도 심각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는 최근 열린 한·EU 공동위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을 들어 유럽의 양대 경제입법이 역내외 기업들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 중국, EU 모두 역내 이기주의로 쏠리는 게 글로벌 경제 현실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보조금 지급과 규제를 활용하는 마당에 한가하게 WTO 기준을 운운할 때가 아니다.
EU의 교묘하고 달콤한 지원 조항의 속내를 샅샅이 따져 우리 기업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도록 선제 대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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