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이력의 악순환'씬파일러 99.9%가 신용 800점 이하... "거래이력이 없지, 빚 안 갚는다 했나"
2023.03.15 16:12
수정 : 2023.03.15 16:1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금융거래이력이 없는 주부와 사회초년생, 이른바 씬파일러(Thin Filer) 1209만명 중 99.9%가 신용점수 800점 이하의 중저신용자로 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씬파일러가 최근 3년간 신용점수에 이의를 제기해 받아들여진 건수는 한 건도 없었다. 당국은 마이데이터 등을 활용해 씬파일러에게 불이익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점수 산정체계가 깜깜이인 데다 비금융정보 활용 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씬파일러 1200만명 시대, 99.9% 중저신용자.. 이의제기 수용률 0%
15일 파이낸셜뉴스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NICE 신용평가와 코리아크레팃뷰로(KCB)의 씬파일러 고객 수는 각각 1209만 5641명, 1209만 3356명으로 집계됐다. 최근 3년간 신용거래 이력이 없는 씬파일러(금융거래이력부족자)가 1200만명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NICE 신용평가 기준으로 보면 고객 네 명 중 한 명이 씬파일러다.
문제는 금융거래 이력이 가벼운 탓에 신용점수가 낮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KCB의 씬파일러 고객의 99.9%는 신용점수 800점 미만의 중저신용자로 분류됐다. 800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씬파일러 고객은 1373명에 불과했다. 700점대가 952만 7126명, 600점대가 256만 4857명으로 전체의 99.9%였다. KCB 점수기준 700점 이하는 서민금융상품 지원 대상이 되는 개인신용평점 하위 20%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절대 다수가 저신용자로 분류된 셈이다.
이런 상황에 씬파일러 고객들이 제기하는 이의제기 수용률도 낮았다. NICE 신용평가에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82건의 이의제기가 접수됐지만 수용돼 반영된 건 한 건도 없다. 현재등급 산출사유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신용등급 상향 방법 문의가 20건으로 뒤를 이었다. 점수를 어떻게 냈는지, 또 어떻게 점수를 올리는지 알려달라는 문의가 절반이다.
당국, 제도개선 서두르고 있지만.. 비금융정보 축적까지는 시간 걸려
당국에서도 제도 개선을 마련하고 있다. 비금융 신용평가사(CB)를 추가로 인가해 신평사간 경쟁을 촉진하고, 비금융정보와 마이데이터를 활용해 거래이력이 부족해도 불이익이 없도록 하는 방안 등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용데이터 정책은 대부분이 씬파일러를 위한 정책들"이라며 "다만 신용평가체계의 글로벌 스탠다드가 '현재의 금융거래 정보' 중심으로 평가하도록 정립돼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3년 전부터 비금융정보를 활용하기 시작한 만큼 데이터가 축적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라며 "상환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의미한 비금융정보가 축적되면 향후 성과도 나오고 더 정교한 평가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무이력의 악순환' 끊기 위해선 채권자 중심 산정체계 개선+투명성 강화
당국도 노력 중이지만 '무이력의 악순환'을 끊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씬파일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파산신청·개인회생신청을 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이어질 수 있다”며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동이체나 통신요금·공과금 납부 등도 신용으로 평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채무자들에게 불리한 연체 정보나 대출 부채 정보에 해당하는 배점을 줄이고, 생계가 어려운 사회 초년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정부·대학·당국 차원에서 생활자금을 빌려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씬파일러가 향후 금융 거래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부가 보증을 서주는 등의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라며 “낮은 신용점수 때문에 씬파일러들이 2·3 금융권으로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결국에는 신용평가체계를 영업기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투명하게 공개하고 채권자 중심의 점수산출로직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강 처장은 "지금의 신용평가체계는 과도하게 채권자 중심"이라며 "소비자에게 불리한 부채 규모, 연체 정보 등은 배점을 낮추고 연체 정보가 없는 공과금, 보험료 등으로 신용점수를 산출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dearname@fnnews.com 김나경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