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도 안되는 반대 의견… '거수기' 오명 못벗은 운용사들

      2023.04.06 18:08   수정 : 2023.04.06 18:32기사원문
올해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이 한껏 활동반경을 넓혔으나 전통 자산운용사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필요성은 여전히 높다. 주주를 대신해 투표 권한을 쥐고 있는 만큼 본래 소유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권리를 실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거수기'라는 오명을 씻어내고 진정한 대리인으로서 주인 의사를 대변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지난해 반대 비중 8.37%

6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지분을 가진 기업의 7398개 안건 가운데 8.37%(619건)에 대해서만 반대표(일부 반대 포함)를 던졌다.

2018년(6.59%), 2019년(6.09%), 2020년(7.91%)과 비교해서는 높아졌으나 전년(9.49%) 대비로는 상당 폭 빠진 수치다.
불행사와 중립행사의 비중은 각각 4.76%(352건), 1.37%(101건)에 그쳤다.

특히 49개 운용사 가운데 안건에 반대 의견을 한 차례도 표하지 않은 곳이 20곳(40.8%)이나 됐다. 반대비율 10% 미만이 18곳(36.7%)이었고, 가장 높은 삼성액티브자산운용도 18.9%에 머물렀다.

자산운용사로 대표되는 '대리인(Agency)'들이 '주식소유자(Beneficial Owner)'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반대 의견만을 적극성의 척도로 삼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수치가 평균 10%를 넘지 못 한다면 안건 9할 이상에 찬성하거나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는 뜻인 만큼 활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운용사들은 자사 펀드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기업의 지배구조를 감시할 동기가 부족하다. 그 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일일이 안건을 분석해 의견을 갖추려면 적잖은 비용이 투입된다. 상품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일이 본업으로 받아 들여지는 상황에서 굳이 다른 곳에 힘을 뺄 이유도 없다.

이 때문에 주주제안 등을 통해 문제 기업을 압박하는 행동주의펀드 등이 만들어졌고, 제도적으론 기관 투자자들에게 적용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 두 축이 함께 돌아가야 보다 효과적이다. 하지만 현재 가입 운용사 57개사 중 주주친화 의결권 지침을 공시한 곳은 16개사(28.1%)에 불과하다. 지난해 신규로 들어온 곳은 한 군데도 없다.

■힘 싣는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운용사들이 의결권 행사에 주체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모양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월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금융투자협회와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겠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은 2008년에 제정돼 2016년 한 차례 개정됐다. 당시 △지배구조 △이사회 △감사(위원회) △임직원 보상 등 기준이 더 구체화됐으나 아직 재개정은 안 되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주주총회 이슈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변화하고 있으므로 개별 운용사들은 수시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필요시 수정·적용해야 한다'고 명시됐지만 의무사항이 아닌 탓에 안착에는 한계가 있다.

당시 이 원장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일에 고의를 가지고 관여했다면 운용사들은 이사 선임 등에 있어 의사를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며 "주주 입장을 대변할 대리인으로서 최소한 그 정도 행동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산운용사도 참여 여지

주인-대리인 문제는 펀드나 상장지수펀드(ETF)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심화된다.

주주를 대리해서 맡는 의결권의 몸집도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만큼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운용자산 규모는 2018년 1019조원에서 2022년 1398조원까지 대폭 증가했다.

행동주의펀드와 결은 다르지만 전통 공·사모운용사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할 여지는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들을 향해 적극적·독립적 의결권 행사를 요구하면서 명분은 갖춰진 상태다.
소수의 지분으로 '대주주' 명함을 달고 경영권을 장악해 주가 상승을 저해하는 행위 등을 단죄한다면 소액주주 지지까지 얻을 수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전통 운용사들이 펀드에 담긴 기업들을 상대로 일일이 행동주의 전략을 취하긴 힘들다"면서도 "가령 해외에 본부를 둔 행동주의펀드를 론칭하는 방식 등 새로운 전략을 택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했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운용사들이 행동주의 전략을 취할 가능성은 있으나 대형사들의 경우 상장사들과 얽힌 지점이 많아 제약은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이주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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