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령에 대한 단상

      2023.06.05 18:09   수정 : 2023.06.05 18:09기사원문
오발령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5월 마지막 날 꼭두새벽에 벌어진 북한의 장거리발사체에 대한 재난경보를 두고서 하는 말이다.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요란하게 사이렌이 울렸던 서울시의 재난경고가 정말로 맞았다면 어땠을까.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 우주발사체가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대형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을 것이다.

오발령 경보가 발동되기 전까지 몇 분간 당혹스럽고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대형 인명피해 없이 해프닝으로 곧바로 끝났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새벽부터 시끄럽게 잠도 못 자게 했다' '대피하라면서 구체적인 장소가 없었다' '일본보다 경보가 늦었다' 등 수많은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서울시의 잘못을 지적하듯 오발령 정정문자를 시민들에게 일제히 보내면서 사태를 더 키웠다. 오발령이라는 용어 자체가 뭔가를 크게 오류를 냈다는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날 일본도 한국과 똑같이 재난경보를 발동했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해제 경보였다. 우리처럼 오발령이라는 용어는 나오지도 않았다. 이날 최초 발령된 일본의 경보 메시지에는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피난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이 담겼다. 경보는 30여분 뒤에 해제됐다. 일본의 경보 해제 메시지는 "조금 전 (북한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우리나라(일본)에 날아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대피 요청을 해제합니다"라는 문구였다. 북한의 발사체가 어디로 떨어질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이 정도 해제 설명은 일본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할 만했다.

이상한 것은 일본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바다 건너 멀리 한반도 서해 쪽에 떨어진 미사일을 두고서 '일본 정부가 왜 호들갑을 떠느냐'라는 불만이 거의 없었다. 잦은 지진으로 재난경보가 익숙해진 일본인들이라고 이해했다.

오히려 일본도 재난경보를 내렸는데, 경보를 발동하지 않은 다른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에 문제를 삼아야 할 판이었다. 국내 여론은 서울시가 일본보다 재난경보가 늦었다고 지적까지 했으니, 경보를 안 낸 지자체들은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어찌 됐든 서울시 입장에선 재난경보를 발동했으니 할 일을 한 셈이다.

오발령 소동으로 여론이 들끓자 국무조정실은 행정안전부와 서울시를 상대로 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오발령이 문제가 아니라 불안한 재난안전 소통 라인에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태원 참사 때도 일원화된 재난안전 소통 라인은 없었다. 대통령보다 재난안전 주무부처인 행안부 장관이 뒤늦게 재난 인지를 했다는 지적까지 받았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서 서울시와 행안부는 재난경보 하나를 두고 다시 옥신각신하고 있다.
어딘가 재난안전 소통시스템의 연결고리 하나가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시스템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가 재난안전 소통시스템의 전면 정밀점검이 필요하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전국부장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