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술에 투자하겠습니까.. 대답은 Yes or Yes
2023.06.21 19:07
수정 : 2023.06.21 19:07기사원문
세계 시장에서 '싸구려' 취급받는 삼성으론 일류기업이 될 수 없다는 자성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이후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며 혁신을 멈추지 않았다. 1995년 구미사업장에서 500억원 상당의 불량 휴대폰을 태운 일은 품질경영과 혁신의 상징적 사례다. 결국 끊임없는 혁신이 현재의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삼성의 힘이 된 것이다.
지금의 국내 주요 기업들도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와 미·중 패권 갈등 등으로 대외 경영환경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혁신의 노력들이 공통적 현상이다.
■"과거 경영방식으론 생존 못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 SK, LG, 현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이 하반기 전략회의를 잇따라 열면서 복합위기 속 글로벌 경영전략을 재조정하고 있다.
SK그룹이 지난 15일 개최한 2023 확대경영회의에선 '위기'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우리는 과거 경영방법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글로벌 전환기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 변수들은 물론 기회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위기시 조직과 자산, 설비투자, 운영비용 등을 탄력적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이 체감하는 경영환경은 혹독하다. 위기는 복합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패권 전쟁은 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무기로 반도체, 이차전지 소재 등 핵심 원자재, 필수 부품의 밸류체인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세계 선두를 지켜온 조선,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국가 주력산업은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처지다. 제조·부품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국·유럽, 일본 등의 메이저기업들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로봇 등 첨단기술을 무서운 속도로 상용화하며 시장을 앞서가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경제를 지탱해오던 수출 부진으로 무역수지는 15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그나마 내수가 버티고 있지만 올해 20조원 이상의 세수가 줄어든 정부, 1800조원 넘는 부채를 지고 있는 가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경제가 1%대 저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란 국제기구들의 경고음이 높아지는 이유다.
■기술·인재에 투자하라
복합위기의 돌파구는 명료하다. 끊임없는 투자로 기술과 인재의 혁신을 끌어내는 것이다. 기존의 경영관행과 체질을 바꾸는 이른바 '창조적 파괴'다.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처음 썼다. 기술혁신으로 신상품·신시장이 등장하면 구시장이 도태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산업정책 전문가인 전윤종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은 "지금은 존속적이냐 파괴적이냐를 가리는 것보다 침체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에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 수 있는 혁신이 더욱 긴요한 상황"이라며 "기술혁신을 통한 초격차 경쟁력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속성장을 위한 기술과 인재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강화한다. 이를 통해 반도체 등 주력분야에서 기술 초격차를 한층 견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이재용 회장의 '뉴삼성'의 골격이다. 삼성전자가 경기 용인에 30년간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 당시 "인재양성과 미래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했다.
LG그룹은 AI를 미래 핵심성장 키워드로 삼고 오는 2026년까지 AI·데이터 분야 연구개발에 3조6000억원을 투입, 미래기술을 선점하고 인재영입에 적극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 체제 전환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 가속 등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본부 조직을 스타트업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아울러 모빌리티·전동화·커넥티비티·AI·자율주행·에너지·로보틱스 등 미래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
포스코그룹은 철강을 넘어 친환경 미래소재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로 투자에 적극적이다. 이차전지 소재 수직계열화, 소재 채굴부터 중간재 생산, 폐배터리 재활용까지 밸류체인의 클러스터를 국내외 거점에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