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반란 뒷수습 "실패할 운명"... 프리고진 여전히 수사
2023.06.27 10:44
수정 : 2023.06.27 15:44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이달 군사 반란으로 집권 23년 가운데 최대 위기를 맞았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사건 이후 처음으로 공식 연설에 나섰다. 그는 반란이 어찌됐든 진압되었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반기를 든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병사들에게 선택지를 남겼다. 바그너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벨라루스로 이동했다고 추정되나 러시아의 보복을 뿌리치기 어려울 전망이며 미국은 이번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푸틴 "적들이 원했던 동족상잔 피했다"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푸틴은 26일(이하 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바그너그룹의 반란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프리고진이 이끄는 바그너그룹은 24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 모스크바 남방 약 200km 지점까지 북상한 뒤 주둔지로 복귀했다. 프리고진은 정권 교체가 아니라 무능한 군 지휘부를 징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고 주장했으며, 벨라루스의 중재 이후 유혈사태를 피하기 위해 반란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푸틴은 26일 연설에서 "이번 상황은 모든 협박과 혼란이 실패할 운명임을 보여줬다"며 "무장반란은 어떤 경우든 진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그너그룹의 지휘관과 병사 대부분이 러시아의 애국자임을 알고 있다"며 그들이 반란에 이용당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마지막 순간에 멈춰서 유혈사태로 향하는 선을 넘지 않은 바그너그룹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란군이 큰 저항 없이 모스크바 인근에 도달한 점을 두고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이어 바그너그룹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도 된다. 아니면 벨라루스로 가라"고 말했다.
푸틴은 직접 프리고진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는 다만 "우크라의 네오나치와 그들의 서방 후원자, 그리고 모든 국가 반역자 등 러시아의 적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동족상잔이었다. 그들은 러시아 군인들이 서로를 죽이길 원했다"고 비난했다. 또한 푸틴은 사태 중재에 나선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러시아, 프리고진 계속 수사
프리고진은 24일 반란 중단을 선언하고 벨라루스로 망명하기로 했다. 그는 이날 러시아 남부 로스토프주의 로스토프나도누를 떠났으며 26일에는 벨라루스 국경에서 바그너그룹의 차량이 목격됐다. 프리고진은 26일 바그너그룹의 텔레그램 채널에 11분 23초짜리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메시지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바그너그룹을 강제로 흡수하려 했다며 이에 항의하기 위해 군사를 움직였다고 강조했다. 앞서 러시아 국방부는 바그너그룹 등 용병기업에 대해 7월 1일까지 정식으로 국방부와 계약하고 활동하도록 지시했으나 프리고진은 이에 반발하며 계약을 거부했다.
프리고진은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정부 전복을 위해 행진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불의로 인해 행진을 시작했다"며 "아무도 국방부와 계약에 동의하지 않았고, 바그너그룹은 7월 1일 이후로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프리고진은 24일 북진 중에 러시아군과 교전한 것에 대해 "우리는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으나 미사일과 헬리콥터의 공격을 받았다"고 항변했다. 이어 "그것이 방아쇠가 됐다. 러시아 항공기를 공격해야만 했던 것은 유감"이라며 "러시아 병사의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또한 프리고진은 메시지에서 하루에 약 1000km를 진군한 전과를 자랑하면서 "우리는 지난해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당일)이 어땠어야 하는지 마스터 클래스를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행진으로 인해 국가의 심각한 안보 문제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앞서 푸틴은 프리고진에게 내란 혐의로 체포령을 내렸으나 24일 망명 합의를 통해 기소를 취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러시아 현지 매체들은 26일 보도에서 러시아 검찰이 프리고진에 대한 기소를 취소하지 않았으며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여전히 프리고진을 수사 중이라고 전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동유럽연구소의 마르틴 크라흐 부소장은 이날 미 주간지 타임을 통해 바그너그룹의 반란 과정에서 러시아 병사 15명이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은 앞서 무슨 합의가 있었던 간에 이제는 지키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타임 역시 푸틴이 과거 지속적으로 해외로 도망친 정적들에게 보복했다고 강조했다.
美, 화풀이 상대 찾는 푸틴과 선 긋기
반란을 넘긴 푸틴은 미국과 서방 세력을 의심하고 있다. 26일 CNN 등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현지 매체 러시아투데이에 보낸 논평에서 서방 정보기관이 이번 반란에 연루됐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라브로프는 구체적인 조사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같은날 러시아 외무부는 우크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몰도바의 러시아 주재 대사를 초치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의심에 민감하게 대응했다. 라브로프에 따르면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 외무부에 미국이 이번 사건과 무관하며 러시아 핵무기의 안전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이날 연설에서 바그너그룹 사태를 언급하고 "나는 우리 모두가 의견이 같은지 확실히 하기 위해 주요 동맹국을 소집했다"며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조율하고 대응을 조율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푸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비난하며 이번 사태를 서방 탓으로 돌릴 수 있다며 이러한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 정상들도 이에 동의했다며 "우린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러시아 체제 내에서의 그들 투쟁의 일부"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도 통화했다고 밝혔다. 바이든은 "나는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방위와 주권, 영토 보전을 지속해서 지원하겠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린 이번 사태의 여파가 러시아와 우크라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평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도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에 미국이 관여한 바가 없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외교 채널을 통해 러시아에 직접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시에 "러시아의 체제 전복은 미국의 정책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