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보훈문화가 국민생활속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할 것"
2023.06.29 17:00
수정 : 2023.06.29 17:00기사원문
"국가와 유공자, 보훈가족은 '갑을관계'가 아니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고귀한 생명과 그 가족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60년대 일본의 '원호처'시스템을 이어받은 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
딱 1년 만이다. 지난해 7월 초, 박민식 당시 국가보훈처장이 파이낸셜뉴스와 현안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보훈처는 이달 초 국가보훈부로 정식 승격됐다. 초대 보훈부 박 장관은 감회가 새롭다. 단지 그가 보훈가족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곱살 때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신 아버지를 잃었다. '소년 박민식'의 가슴속엔 늘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자랑스런 아버지가 있었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시혜적 보훈 시스템은 청년 박민식이 되어서도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늘 찜찜했다. 박 장관에게 보훈은 예우지, 시혜가 아니다. 특히 '보훈의 일상화'는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인 출신인 박 장관을 첫 보훈처장에 낙점했던 것도 "확고한 보훈체계는 강한 국방력의 근간"이라는 평소 국정 철학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이 당시 '보훈처장 자리는 딱 '박민식'이다'라고 한 것도 박 장관의 경험적 체득에 따른 보훈 철학과 윤 대통령의 그것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부 승격을 일궈낸 박 장관의 다음 스토리는 '일상의 보훈화'를 구체화시키는 거다. 특정한 날에만 추모하는 게 아니라, 1년 365일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고귀한 생명과 가족들에 대한 예우를 결코 '무겁지 않게' 국민들이 '유쾌하고 신나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박 장관은 지난 29일 파이낸셜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보훈'하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이 뭔가 어렵고 딱딱하고 엄숙하게 생각하며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앞으로 보훈문화가 국민생활속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세부적으로는 현충원 등 다양한 보훈 공간을 연중 국민들이 즐겨찾는 국가적 상징공간으로 조성하겠단 구상이다.
대담=정인홍 정치부장(부국장)
―62년 만의 숙원이었던 국가보훈부로 승격됐다. 축하드린다. 소감은.
▲지난 1년여간 국가보훈처장을 맡아온 제가 다시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의 대임을 맡게 돼 무척 영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제가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이 된 것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책임있게 완수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다. 국가보훈부 출범으로 주어진 ‘일류보훈’의 숭고한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분골쇄신(粉骨碎身)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국민들이 '국가보훈부’ 승격이후 체감하게 될 변화는.
▲행정적으로는 장관이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에 직접 참여하고, 필요시 직접 부령(部令)을 발령할 수 있어 유관부처와 대등한 위치에서 협의하며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보훈정책을 한 단계 격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례로, 국가보훈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가 관할하던 국립서울현충원 이관이 68년 만에 성사돼 전국 12곳의 국립묘지를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국가보훈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존중받고 예우받는 보훈문화의 확산이다. 이를 위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보훈교육과 캠페인을 활발하게 전개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우가 사회 전반에 문화로 자리잡도록 하고, 이를 통해 국가정체성 확립과 튼튼한 안보에 기여할 것이다. 보훈부 승격을 계기로 보훈가족들의 권익을 더 잘 대변하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국격에 걸맞은 ‘일류보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매진하겠다.
―처장시절부터 시혜적 보훈이 아닌, ‘보훈의 일상화’를 강조하셨는데.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보훈정책은 돕고 보살핀다는 시혜적인 개념의 ‘원호(援護)’가 전부였다. 이후 62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면서 보훈정책의 개념도 국가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예우인 ‘보훈(報勳)’으로 발전했다. 지난 5일 거행된 국가보훈부 출범식은 ‘원호(援護)’에서 ‘보훈(報勳)’으로 발전한 우리 보훈 60년사의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국가보훈부 출범을 계기로 현충일과 같은 특정 기념일에만 찾는 ‘일회성 보훈’이 아닌 ‘일상 속 보훈’, ‘문화로서의 보훈’으로 늘 우리 생활 속에 있도록 하겠다. 국가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영웅들에 대한 존중과 기억의 보훈문화가 국민의 일상이 되는 것을 국가보훈부의 사명으로 삼고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보훈부 승격 이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할 업무는.
▲지난 1년 여간 국가보훈처장직을 수행하며, 보훈이 국민 일상 속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보훈’ 하면 아직도 우리 국민들이 뭔가 어렵고 딱딱하고 엄숙하게 생각하며 거리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일례로, 서울현충원과 같은 국립묘지도 추모를 하는 엄숙한 공간으로만 생각하지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찾지 않는게 너무 아쉽다.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는 영웅들을 안장하고 추모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문화공간으로서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도 꼭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공간으로 잘 꾸며져 있다. 앞으로 국방부에서 국가보훈부로 이관된 국립서울현충원을 미국의 알링턴처럼 국민들이 365일 즐겨찾는 '대한민국 호국보훈의 성지'로 재창조할 에정이다. 그 시작으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월 한 달간 서울현충원에서 음악회(15일), 어린이 뮤지컬(17일), 돗자리 영화제와 토크콘서트(24일)를 진행했고, 밀리터리-한복 패션쇼(30일) 등 '국민과 함께하는 Amazing Cemetery' 문화특집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벌써 많은 시민들이, 부모님과 아이가 손잡고 찾아주셨다. 아울러 용산 호국보훈공원, 낙동강 호국벨트 조성 등 특정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연중 국민이 즐겨찾는 국가 상징공간을 조성해 보훈문화가 국민생활 속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
―작년부터 6·25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는 백선엽 장군 추모정책을 진행해왔는데.
▲저는 취임하면서부터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자유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바로세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추진해왔다.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에서 탁월한 전술로 다부동 전투 등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전쟁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이며, 한미동맹의 기틀을 닦은 상징적인 분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오히려 한국보다 미군측에서 백선엽 장군을 '살아있는 전설(living legend)'이자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부르며 존경과 예우를 표해왔다. 반면 그동안 한국에선 이념, 진영에 따라 백선엽 장군의 공적이 축소되거나 왜곡되는 등 영웅을 영웅으로 마음껏 부를 수 없었던 잘못된 분위기가 있었다.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는 보훈의 영역을 넘어 국가의 미래 번영이 달린 중차대한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진영을 떠나서 나라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리신 영웅들의 업적, 그리고 자유대한민국의 역사를 올바로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전히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
▲역사적인 인물에게 그림자가 있더라도 빛이 훨씬 크면 후손들이 존중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밝혀진 공과(功過) 또한 진영을 대변하는 우상화 또는 상대를 비판하는 수단이 아닌 다음세대가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는 전통이 자리매김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청춘과 목숨을 바쳐 헌신하신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 등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동상을 도시 곳곳에 세우고 긍정적인 면을 배우려고 한다. 우리도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백선엽 장군 등 호국영웅들의 공적을 제대로 알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구체적인 국가적 예우와 수준은 어떤 게 있나.
▲우선 6·25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던 낙동강 방어선에 호국벨트를 조성해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지로 만들고자 한다. 다음달(7월) 5일 백선엽 장군의 동상을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기념관내에 건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인 낙동강 방어선(워커라인) 주요 거점에 상징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호국벨트'의 의미를 강화할 계획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갖고 있는 안보·역사적 가치를 제고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미래의 애국의 역사와 보훈의 가치를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지로 만들것이다. 아울러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이 국가보훈부 소관 비영리법인으로 30일 공식 출범한다. (백 장군 자녀)백남희 여사가 재단법인 발기인에 참여했고,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이사장을, 백 여사가 명예 이사장직을 맡기로 했다.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은 백 장군의 추모행사, 기념물 건립, 문화행사, 민간차원의 한미동맹 증진, 국내외 참전용사 및 유족과의 봉사, 제복의 영웅이 존경받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알고 있다. 보훈부가 협조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 지원하겠다.
―끝으로 국민들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윤석열 정부의 보훈에 대한 강한 의지와 보훈가족과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 덕분에, 지난 6월 5일 국가보훈부가 새롭게 출범했다.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국가보훈부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켜 ‘보훈’이 국가의 정신적 근간이자 문화로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또한 백선엽 장군, 이승만 대통령과 같이 공적에 비해 과도하게 폄훼되었던 영웅들을 이제라도 음지에서 양지로 모실 수 있도록 힘쓰겠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많은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정리=
syj@fnnews.com 서영준 서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