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바그너 사태에도 용병 못 버려

      2023.07.23 13:07   수정 : 2023.07.23 13:07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민간군사기업(PMC)으로 불리는 용병들이 난립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근심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용병 반란을 겪은 푸틴이 용병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우크라 전쟁의 애매한 성격 때문에 용병을 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27개 용병단체 활동, 전쟁 이후 11개 신설

지난 6월 29일(이하 현지시간) 우크라 매체 키이우포스트는 우크라 비정부 군사정보단체 몰파(Molfar)를 인용해 현재 37개의 러시아 PMC가 확인되었으며 이 가운데 27개가 활동중이라고 전했다.

27개 중 약 70%는 러시아가 우크라 크림반도를 불법 합병한 2014년 이후 창설되었고 이 가운데 11개는 지난해 우크라 침공 이후 탄생했다. 몰파에 의하면 27개 단체 중 4분의 1은 오로지 우크라에서 활동하고 약 12개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움직인다.


가장 세력이 큰 곳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끌었던 '바그너그룹'이고 2위는 러시아 연방 산하 체첸 공화국의 람잔 카디로프 수반이 지휘하는 '카디로브치군'이다. 프리고진이 반란으로 제거하려 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역시 '패트리어트'라는 PMC를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도 최근 해외 자산 보호 및 우크라 전쟁 지원을 위해 '파켈(횃불)'과 '플라야(화염)'이라는 2개의 PMC를 조직했으며 심지어 지난해 11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지원병' 부대를 만들어 우크라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내부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역시 'RSB 그룹'으로 알려진 PMC를 지원하며 FSB 관련 기업 보안 업무 등을 맡기고 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 괴뢰정부인 크림자치공화국에서 수반을 맡고 있는 세르게이 악쇼노프 또한 러시아 PMC '콘보이(호송대)'의 지원을 받는다고 알려졌다.

유럽 비영리기구인 온전한민주주의센터의 안톤 셰콥초프 국장은 지난 5월 유로뉴스를 통해 "러시아 엘리트들이 PMC를 세우면 정부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PMC로 우크라 전쟁에 기여하면 보상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비영리단체인 국제안보연구팀의 다닐로 델레 파브 애널리스트는 16일 프랑스 매체 프랑스24를 통해 PMC를 거느린 엘리트들이 마치 봉건제도와 유사한 권력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엘리트들이 서로 견제하기에 바빠 연합하기 힘들다며 이러한 구조가 푸틴에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식 모델에 영감...러시아식 적용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인종을 지닌 러시아는 이미 과거 제정 시대 이전부터 적극적으로 용병을 사용했다. 옛 소련 역시 파르티잔을 비롯해 각종 비정규군을 동원했다. 이러한 전통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국가 주도의 PMC라는 형태로 이어졌다.

옛 소련 시절 해외 공작을 수행하던 러시아군 총참모부 정보총국(GRU)은 연방의 붕괴와 푸틴 집권 이후 국방개혁으로 규모와 활동 범위가 모두 줄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 전쟁 등을 겪으면서 해외 공작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2012년에 국방장관에 오른 쇼이구는 GRU 역량 강화를 추진했으나 당장 특수부대 숫자를 늘리기 어려웠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의 '블랙워터'같은 PMC를 참고해 러시아식 PMC를 창설, GRU 산하 병력으로 사용했다. 당장 바그너그룹부터 GRU 관계자들이 세운 조직이다.

프랑스24는 러시아 PMC가 서방의 PMC와 달리 자주적인 민간 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전쟁포로 감시단체 굴라그닷넷의 블라디미르 오세츠킨 대표는 러시아 PMC가 "정규군 기지에서 훈련을 하고 정규군 장비를 사용하며 정부와 관련된 사업가들이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러시아 PMC들은 아프리카나 기타 신흥시장에서 군사 교육과 경호, 정치 자문 서비스 등을 제공하면서 현지 이권사업에 손을 댔다. 러시아는 2012년부터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바그너그룹을 파견, 정권유지를 돕는 대가로 금광과 다이아몬드 광산, 삼림벌채권 등 상당한 이권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미 국방부 분석가로 활동하다 현재 영국 성 앤드류 대학에서 국제 관계학 전문가로 일하는 마르셀 플리치타는 "프리고진은 단순한 용병 두목이 아니라 사업가"라며 "바그너그룹이 다른 PMC보다 특별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플리치타는 "프리고진은 아프리카에서 자신의 회사와 직원, 병력을 이용해 금광을 채굴하여 수출한다"며 "지금 시점에서 이런 능력이 있는 다른 비정규군은 없다"고 설명했다.

동원령 어려워 용병 의존 커질 수도

용병은 강제 징집한 국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인 피고용인이기 때문에 국가 입장에서 위험한 작전에 부담 없이 투입할 수 있다.

델레 파브 애널리스트는 "용병은 지저분한 일이나 정규 특수부대를 투입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에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용병은 특정 국가의 군인이 아니기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도 동원할 수 있다. 푸틴은 지난 2011년 시리아 내전이나 2014년 크림반도 강탈 등 정치적으로 러시아 정규군이 개입되면 곤란한 사건에 바그너그룹같은 PMC를 투입했다. 또한 용병은 정규군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 사망이나 부상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 러시아 정부는 지금까지도 각종 PMC들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비정규군' 혹은 '자원봉사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푸틴은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크라 침공에 대규모 PMC 병력을 투입했다. 그는 명분 없이 시작한 이번 침공을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이라고 부르면서 최대한 지지자들의 일상과 분리하려 노력중이다.

이미 푸틴은 지난해 9월 부분 동원령을 내리면서 심상치 않은 저항을 경험했다. 푸틴 입장에서는 괜히 동원령을 내려 민심을 자극할 바에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익이다. 또한 용병은 사망자 숫자를 공개할 필요가 없으니 사기 유지에도 유리하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9월에 누적 사망자가 5937명이라고 밝힌 이후 공식 집계를 내놓지 않았다. 민간 전문가들은 현재 러시아군 사망자를 최대 4만7000명까지 보고 있다. 플리치타는 "PMC 숫자는 우크라 전쟁이 끝난 이후에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최전방 용병으로 배치된 러시아인들이 일자리도 얻고 사회에서 배운 기술을 계속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일단 PMC를 활용하면서도 정부 통제를 강화할 전망이다.
푸틴은 13일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PMC은 법적으로 없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러시아 정부는 PMC의 법적 지위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우크라 전선의 PMC들은 바그너그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달부터 러시아 정부와 직접 고용 계약을 체결하여 활동하고 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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