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책임 덤터기 쓸라"… 건설사 ‘무량판 민간조사’ 식은땀
2023.08.06 18:27
수정 : 2023.08.06 18:27기사원문
이번 주부터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되는 가운데 건설사들도 자체 대응에 나서면서도 '덤터기'를 쓰지 않을까 초긴장 상태다. 무량판 민간 전수조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달리 주거동까지 범위가 확대된 데다 안전진단 비용도 건설사가 부담토록 돼 있다.
한 건설사 임원은 "자칫 '묻지마식' 보여주기 검사나 무작정 시공사에 책임이 전가 되는 두루뭉술한 조사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나오고 있다"며 "부실 공사 점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 데 무량판은 잘못 됐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민간 주거동 조사… 293개 단지 착수
6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번 주부터 주거동을 포함해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293개 단지에 대해 전수조사에 착수한다. 시공 중인 현장 105곳과 2017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188곳을 대상으로 9월말까지 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계는 무량판 적용 여부와 건설현장 점검 등 안전점검에 나서고 있다. 설계도면과 일치 여부 등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구조로 시공한 곳을 미리 파악해 문제 소지 여부를 미리 검사하는 등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시공중인 현장을 비롯해 준공된 아파트의 경우 입주민들이나 입주예정자들이 불안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0년간 지어진 아파트 중 상당수는 무량판 구조를 사용했다. 일례로 최근 5년간 무량판 구조 아파트 주차장에 대한 전수검사를 진행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도 2014년 착공 아파트부터 무량판 적용이 확인되면서 추가 검사를 진행중인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점검 초점이 '이권 카르텔'이 아닌 '무량판 구조'에 집중되면서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무량판 아파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 거주 중이거나 입주예정 단지가 무량판인지에 대한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무량판 구조 아파트 실명이 공개되는 것과 관련 "주민 불안감 조성, 재산권 침해 논란 등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이 우려됨에 따라 불필요한 정보제공 및 아파트 실명 공개 자제를 당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만으로 천장을 지탱하는 구조로 해외에서도 일반 주거 공간에 폭넓게 사용되는 방식이다. 국토부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에 분양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도록 가산점까지 주며 장려하던 공법이다. 그런데 갑자기 무량판 구조만 특정해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하자 건설사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시공사가 모든 비용부담… 무량판은 정부도 장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지하 주차장 뿐만 아니라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가 사용되었다고 하니까 입주민들의 불안은 엄청날 것 같은데, 정말 엄청난 부실시공이 아닌 이상 주거동의 무량판 구조는 큰 문제가 없다"며 "웬만한 건축물은 코어가 건물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에 아주 심하게 부실시공이 된 부분이 없는 한 무량판 구조라고 해서 무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전수조사와 관련해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치도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점검비용은 원칙적으로 시공사가 부담하고, 철근 누락 등이 발견된 경우 시공사가 연내 보수·보강을 실시하도록 한 상태다. 사실상 시공사에 모든 부담이 몰리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준공단지의 점검비용을 시공사에게 부담하게 하는 게 적절한 지를 비롯해 조사 결과 이후 각 부문별 문제 원인에 따른 비용 부담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입주한 단지의 경우 점검이나 결과 이후 피해 보상 등에 대한 논의도 민감한 분야다.
안홍섭 건설안전학회 회장은 "해외에서는 건설을 최초 주문하는 발주처의 책임이 가장 크게 부여돼 있는 게 일반적이며, 발주와 설계·시공 등 각각의 책임이 분명하게 적용돼 있다. 책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점검에서 불법행위가 적발된 설계·시공·감리자에 대해선 엄중 처벌하겠다는 방침도 내놨지만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다.
ljb@fnnews.com 이종배 연지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