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 전성기부터 해체까지…'車 사랑'에 울고 웃은 김석원 전 회장
2023.08.26 15:10
수정 : 2023.08.26 15:1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쌍용그룹의 전성기부터 해체까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았던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자동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던 고인은 자동차 사업으로 기쁨과 슬픔을 모두 맛봤다.
26일 성곡언론문화재단은 김 전 회장이 이날 새벽 3시께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1945년생인 김 전 회장은 대구 출신으로,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서 공부했다. 1975년 부친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별세하면서 31세의 젊은 나이에 그룹을 물려받게 됐다.
당초 쌍용그룹은 소규모 비누공장을 모태로 출발해 레미콘 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김 전 회장의 취임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중화학, 금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그룹을 재계 6위까지 성장시켰다. 쌍용중공업과 쌍용종합건설을 세우고, 효성증권을 인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힘을 실었다.
특히 평소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던 김 전 회장은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삼성을 제치고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후 쌍용자동차는 코란도, 무쏘, 체어맨, 렉스턴 등을 선보이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승용차 브랜드로 이름을 알리며 사업을 키워갔다.
하지만 막대한 초기 자금 투입과 무리한 자동차 사업 확대로 인해 경영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 전 회장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진출하고, 1997년 IMF 등이 겹치면서 사업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1998년 의원직을 사퇴, 경영에 복귀하며 쌍용차 매각 등을 타진했지만 인수처가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채권단에 의해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김 전 회장도 경영권을 잃게 됐다. 그룹 역시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김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분식회계와 배임·횡령 등으로 수차례 법정에 서기도 했다.
고인은 스포츠 분야 등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난 1974년 용평 스키장을 만들어 리조트로 개발,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 발전의 초석을 마련했고, 1982년에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선출돼 스카우트 운동에도 헌신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된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을 맡아 청소년 국제교류에 기여하고, 2000년부터 2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직을 맡아 한국스카우트의 위상을 높였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