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M, 신뢰가 생명이다
2023.10.12 18:00
수정 : 2023.10.12 18:00기사원문
최근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VCM)'이 탄소중립 이행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탄소시장은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으로 나뉜다. 규제시장은 정부 등 규제기관에서 배출량 목표를 할당하고, 할당된 배출량의 과부족분에 대해 배출권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그동안은 탄소감축의 주체가 국가로 인식되어 규제시장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기준이 확산되면서 기업과 투자자가 주체가 되는 자발적 시장이 더 유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주행 중 충전된 전기를 활용해 신선식품을 유통하는 냉동탑차(콜드체인차량), 폐타이어를 열분해하여 생산된 오일, 볏짚 등 농업부산물을 활용한 탄소 토양격리기술, 바닷속 불가사리로 만드는 친환경 제설제 등 새롭고 다양한 탄소감축기술이 기업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자발적 시장은 규제시장보다 유연하고 혁신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기존 규제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 신기술 개발과 제품 혁신을 통한 탄소감축도 인정받을 수 있어 자발적 시장에 대한 수요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국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 기업의 자발적 탄소시장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기업 10곳 중 7곳은 자발적 탄소시장이 탄소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자발적 시장 규모는 맥킨지의 전망에 따르면 2021년 약 1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500억달러로 약 50배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 시장 확대를 위해 유엔 주도로 만든 태스크포스(TSVCM)에서는 파리협정에서 결정한 1.5도 경로에 맞추려면 2030년까지 현재의 자발적 인증이 최소 15배 이상 성장하고, 2050년에는 2020년 대비 160배 정도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더 나아가서 규제시장과 자발적 시장의 경계도 점차 모호해지고 있다. 싱가포르,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자발적 시장에서 인증한 탄소배출권을 규제시장에서 사용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렇지만 자발적 시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대형 석유기업 셰브론이 2021년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탄소포집 및 저장(CCS) 기술에 적극 투자해 왔으나, 한 글로벌 평가기관으로부터 셰브론이 구매한 탄소배출권의 93%가 실질적으로 탄소감축 효과가 없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신뢰성 논란에 휩싸였다. 자발적 시장의 신뢰성을 높이려면 정교한 측정·보고·검증시스템(MRV)을 구축하고, 객관적 제3자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유엔, TSVCM, 국제배출권거래제협회(IETA) 등 국제기구와 상호협력을 통해 신뢰성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은 규제정책만으로 목표를 이룰 수 없다. 탄소감축을 잘하는 기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자발적 시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대한상의는 자발적 탄소시장 운영을 위한 탄소감축인증센터를 개설했다. 상의는 신뢰성 확보를 위해 지난 7월에는 환경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탄소중립 프로그램 '코르시아(CORSIA)' 심사, 인증체계와 배출권 품질을 평가·인증하는 프로그램 '아이크로아(ICROA)' 인증을 추진 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겠지만 민간 주도로 탄생하는 자발적 탄소시장이 기업과 국민의 노력을 모아 탄소를 효과적으로 감축하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