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사라진 이태원…"추모와 축제 함께해야"
2023.10.28 21:31
수정 : 2023.10.28 21:49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보라색 리본과 팔찌, 스티커를 나눠드립니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앞에는 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참사 기념품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바로 옆 참사 현장이었던 골목길 입구에 조성된 '기억과 안전의 길'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찾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반면 각종 분장으로 꾸민 사람들로 가득했던 예년의 이태원 분위기는 사라져 있었다. 골목 뒤 메인도로인 세계음식문화거리도 마찬가지였다. 핼러윈 소품으로 장식한 가게는 찾아보기 힘든 반면, 200m 가량에 걸쳐 경찰의 안전펜스가 설치된 거리에는 경찰과 용산구청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삼엄함이 느껴졌다. 이태원에서 가장 붐비는 공간 중 하나인 해밀턴호텔 뒤편에 모여 있는 라운지바들은 손님이 거의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추모공간이 조성된 골목은 일방통행을 이유로 통행이 통제되고 있었다. 추모객을 맞이하는 시민단체들은 "길을 막으면 추모를 못한다", "오히려 병목현상이 생긴다"며 경찰과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골목 진입 자체를 막던 경찰은 뒤늦게 "추모하는 분들은 자연스럽게 가시도록 하라"며 지침을 변경했다.
일부 상인들은 경찰과 지자체의 과잉 대응이 이태원 상권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외국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남성 A씨는 "어제 매출이 평일 수준에 못미쳤다. 평소 금요일에 비하면 5분의 1이 안된다"며 "추모와 진상규명은 당연히 해야 한다. 유족들과 상인은 같은 생각인데 경찰이 전쟁난 것처럼 바리케이트를 치면 누가 놀겠냐"고 지적했다.
각종 단속이 평소보다 심했다고도 설명했다. A씨는 "똑같이 음악을 틀었는데 소음 단속을 나와 계도를 하고 야외 홍보물이 조금 튀어나왔다고 뭐라고 한다"며 "안그래도 장사가 안되는데 시비를 거는 거 아닌지, 장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국 식당 직원 이모씨(30)는 "어제는 놀러온 사람보다 경찰과 구청 직원이 더 많아서 놀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평소 주말보다 없을 줄은 몰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이태원에 가지 말자는 얘기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참사 유가족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도 이태원 상권 회복이 추모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한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 위원은 "이태원이 오면 안 되는 장소가 되지 않기를 유가족과 생존자 모두 바라고 있다"며 "이태원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추모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이유에서 핼러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념품을 준비했다고 박 위원은 전했다.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은 시민들에게 팔찌와 리본을 나눠주는 동시에 핼러윈 분장의 하나인 타투 스티커를 붙여줬다. 추모 공간에 조성된 벽 위쪽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에 나오는 메리골드 꽃길을 만들어놨다. 메리골드는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꽃말을 가진 꽃으로, 멕시코에서 조상을 기리는 명절에 고인을 가족 곁으로 안내하기 위해 메리골드로 집안을 장식하는 것처럼 꾸몄다고 박 위원은 설명했다.
다만 핼러윈을 복장을 한 일부 젊은이들은 일 년 전 참사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핼러윈 분위기로 꾸민 20대 여성 A씨는 "이태원에 오랜만에 왔다"며 "작년 참사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무관하게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B씨 역시 "남자친구하고 밥먹으러 온 것뿐이다"라고 했다.
반면 이태원을 기피하는 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직장인 조모씨(30)는 "지인이 주변에서 카페를 해서 추모할 겸 방문했다"며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은 오기 꺼릴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여전히 즐기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기서 생계를 꾸리는 상인들도 있기 때문에 분위기가 바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는 "분향소를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려고 한다"며 "참사에 대해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무작정 이태원을 피해서 상권이 죽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