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스토리 전성시대
2023.12.05 18:48
수정 : 2023.12.13 10:47기사원문
얼마 전까지 '인문학으론 밥 먹고 살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대학마다 '인문학 위기론'으로 학과가 없어지거나 통합되었다. 그야말로 국문학과는 '굶는 과'로 불리고, 인문학은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필자가 석사·박사를 공부할 때도 그 불투명성은 여전히 존재했다. 이런 담론이 나온 지도 어언 십오륙년이 지났다. 그리고 필자가 지식재산(IP)과 스토리텔링을 융합한 논문을 발표했듯이 스토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어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산업, 콘텐츠 시장은 이제 문학에 내재한 풍부한 원천 스토리를 게임, 드라마, 영화 등에 접목하면 무한한 부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 국내 웹툰과 웹소설에 기반을 둔 글로벌 영상 콘텐츠의 인기 스토리들은 IP로 떠오르면서 그 몸값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흥행에 성공할수록 스토리의 중요성은 돋보였다. 이제는 잘 발굴한 스토리 하나가 밥 먹여주는 시대가 됐다.
기업이 인재를 뽑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블라인드 평가, 자기소개서 등 정성적 평가가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스토리를 잘 구성해낸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스토리의 재료를 뽑아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어학연수, 인턴 등 비슷한 패턴의 경험보다 자신만의 경쟁력을 나타낼 수 있는 '스토리'가 채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기업의 평가기준도 '스토리'로 전환되었다. 예전에는 많이 팔고 이윤을 크게 남기는 것이 좋은 기업의 척도였지만 이제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강조되면서 기관투자자들은 ESG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워간다. 반면 천문학적 적자를 내더라도 미래 성장성이 기대되는 기업은 기업가치가 10조원 이상 한다는 데카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데카콘 기업의 첫 주인공은 2007년 미국의 페이스북(현재의 메타)이었다. 한국에서는 쿠팡이 데카콘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당일배송 시스템을 구현하는 쿠팡이 전통 유통기업인 신세계,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을 제치고 가장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이유는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성장 서사가 의도된 적자'라는 타이틀로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데 있다. 외형과 숫자가 아닌 미래의 성장 서사가 곧 기업가치인 시대다. 역사가 긴 기업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토리가 있는 기업이 점수를 더 받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적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나열식 서사가 아닌 설득력 있는 스토리가 그 안에 있다. 숫자 이면에 보이는 패러다임 변화와 이를 관통하는 사업 아이템, 구성원의 창의성 등이 결합된 스토리가 존재한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 역시 기술이나 매출액 숫자보다 이면의 성장 스토리에 주목한다. 스토리는 추상적 창작물이 아닌 체계적 집필에서 탄생한다. 다시 문예창작과, 국문학과 등 글 쓰는 작가의 시대가 되고 있다. 플롯을 기반으로 매력적인 스토리를 입히는 방법은 분명 문학을 전공한 창작자의 영역이다. 이런 기업의 스토리 발굴과 집필은 기업의 가치 상승뿐 아니라 부를 창출해 내는 핵심이다. 이제 스토리가 밥 먹여주는 세상이 되었다. 스토리가 곧 돈이다.
이가희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장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