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위험한 '눈치 싸움'...직접 충돌은 피해야

      2024.01.23 05:00   수정 : 2024.01.23 05:00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이란이 중동 무장단체를 가운데 두고 기싸움을 이어가는 가운데 양측의 정면충돌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양국 모두 서로 직접 공격받기 전에는 분쟁을 키우기 싫다는 입장이나 지금처럼 충돌이 계속된다면 직접 충돌은 시간문제다.

美 '미국인 사망하면 선 넘은 것'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1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이 최근 이란의 지원을 받는 중동 무장단체들의 무력 도발 때문에 확전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단체,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을 포함해 이른바 '저항의 축'에 속한 무장단체들은 이란의 경제 및 군사 지원을 받으며 이란의 입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을 상대로 도발을 반복하는 중이다.
해당 단체들은 이번 분쟁에서 마찬가지로 이란의 도움을 받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를 돕겠다고 선언했다.

NYT에 의하면 저항의 축 소속 단체들은 지난해 하마스의 공격 이후 20일까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최소 140번이나 미군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약 70명의 미국인이 다치고 일부는 중상을 입었다. 특히 20일 이라크 알 아사드 공군 기지에서는 무장 단체가 발사한 17기의 단거리 미사일 가운데 2기가 기지 방어를 돌파하기도 했다. 남쪽 홍해와 아덴만에서는 후티 반군이 해외 상선을 무차별 습격하고 있으며 미국 선박의 경우 군함과 상선을 가리지 않고 공격중이다.

미국도 반격에 나섰다. 이라크에서는 무장단체 거점에 공습을 가했고 에멘의 후티 반군 근거지는 이달 들어 7회나 폭격했다.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가 무력 도발 이후 보복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이란을 직접 공격하여 이란과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관계자는 이란의 지시를 받는 무장단체가 미국인을 살해한다면 선을 넘는 짓이라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애론 데이비드 밀러 선임 연구원은 "바이든 정부는 안전한 해법이 없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을 직접 공격한다면 후티 반군을 포함해 친이란 무장단체들이 미군을 공격할 구실만 늘려주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밀러는 "만약 미군이 무력 도발로 사망할 경우 미국 역시 이란의 자산을 직접 공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경고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저항의 축 단체의 공격에 사망한 미국인은 없다. 지난 11일 아덴만에서는 미 해군 특수부대원 2명이 후티 반군으로 향하는 무기 압수 작전에서 실종되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21일 발표에서 이들이 작전 중에 바다에 빠졌다며 시신을 찾지 못했지만 사망 처리한다고 밝혔다. NYT는 저항의 축 단체들이 조금이라도 운이 좋거나 실력이 나아진다면 머지않아 손쉽게 미국인을 살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가자지구 교전 멈추고 핵협상 재개해야'
이란 역시 미국과 직접 싸울 생각은 아직 없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정권을 잡은 이란의 이슬람 시아파 정부는 1982년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창설을 지원하면서 중동 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 및 이스라엘과 중동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이란은 하마스의 공격 이후, 즉각 이스라엘과 미국에게 가자지구에서 손을 떼라고 주장했다. 이란은 교전 중지를 요구하면서도 저항의 축 단체들의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그러나 이란은 지난 3일 발생한 테러 이후 무장단체를 이용한 간접 개입대신 보다 적극적으로 분쟁에 끼어들었다. 이란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폭탄 테러로 100명 가까이 숨지자 IS 관련 세력을 응징한다며 이라크와 파키스탄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란은 이라크 공격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시설도 함께 공격했다.

이란 정부 관계자는 21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은 전략 변경이 아닌 전술 변경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파키스탄과 이라크 공격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상대로 '이란에게 덤비지 말고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이란은 이스라엘 및 미국과 직접 전쟁할 생각이 없지만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걱정하길 원하며 이란과 전쟁이 얼마나 고약할 지 보여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한 전술의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란 내 강경파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강경파들은 제한적이고 계산된 방식으로 분쟁에 개입하면 저항의 축 무장단체들에게 이란이 그들을 지원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한 이란의 최근 돌발 행동은 미국과 핵협상 재개를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 이란은 2021년부터 바이든 정부와 핵협상 복원 협상을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이란이 하마스를 도왔다고 보고 사실상 협상을 중단했다. 동시에 이란에게 올해 11월 대선 전까지 핵협상을 재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이란은 농축 우라늄 생산을 늘리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 중동·북아프리카 본부장은 "이란의 최우선 과제는 이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란은 이란이 직접 공격받기 전에는 절대 군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저항의 축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내다봤다. 바킬은 이란이 이란 국경에서 최대한 위험요소를 밀어내길 원하며 이를 위해 친이란 조직들을 계속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이란 입장에서 "그동안 저항의 축에 투자했던 것이나 중동 내 입지를 너무 많이 잃어서는 안 된다"고 진단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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