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당국, 몰락한 SPAC(스팩) 시장에 규제 강화...마침표 찍나
2024.01.25 13:51
수정 : 2024.01.25 13:5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지난 2021년 한국 ‘서학개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미국 증시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투자가 곧 막을 내릴 전망이다. 미 금융 당국이 스팩 합병 규정을 크게 강화했기 때문인데 현지 업계에서는 관계 당국이 이미 쓰러진 시장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는 반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4일(이하 현지시간) 투표에서 스팩 합병 정보 공개 강화 규정을 찬성 3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스팩은 다른 기업을 합병할 목적으로 만든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다. 투자자들은 우선 돈을 모아 스팩을 만들어 증시에 상장한 다음 자금 모집 당시 목표로 밝힌 실제 기업을 2년 내에 합병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복잡한 절차 없이 비상장 우량기업을 손쉽게 상장기업으로 만들 수 있다. 스팩은 기한 내에 목표 기업을 합병하지 못하면 청산절차를 밟아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
2021년 미국과 한국의 개인투자자(개미)들은 공식적인 상장 및 공모보다 손쉽게 신규 상장주를 얻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스팩 투자에 열광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20년과 2021년에 860개의 스팩이 모두 2460억달러(약 327조6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스팩의 인기는 곧 사그라들었다. 2022년 스팩에 몰린 자금은 134억3000만달러에 불과했으며 지난해에는 겨우 31개의 스팩이 38억5000만달러(약 5조1412억원)를 모으는데 그쳤다. 이는 2019년 모집액(136억1000만달러)에도 크게 못 미치는 금액이다.
투자가 급감한 가장 큰 이유는 스팩으로 우회 상장한 기업들이 광고와 달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2021년 이후 합병이 완료된 401개의 SPAC 가운데 합병 계획 발표 때보다 주가가 오른 SPAC은 27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8월 15일 스팩 우회상장으로 미국 나스닥에 진출한 베트남 전기차 기업 빈패스트의 시가총액은 상장 초기 주가 급등으로 미국 3대 자동차 제조사의 시가총액 합계를 넘어섰다. 빈패스트 주가는 상장 당시 주당 10달러 수준에서 열흘 뒤에 68.77달러로 장을 마쳤지만 이달 24일 마감가는 5.91달러에 불과하다.
WSJ는 일반적으로 상장 절차를 밟는 기업들의 경우 매우 신중하게 사업 전망을 내놓는다며 스팩 상장 기업들은 이와 반대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부분 영업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여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SEC는 이러한 상장 절차에 대해 일반 주식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 적고 부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스팩 합병 초기에 손을 댄 헤지펀드나 유명 투자자들이 각종 특약을 통해 주식을 저가 매수하는 관례도 도마 위에 올랐다.
SEC가 2022년 제안해 이번에 통과된 규정에 따르면 앞으로 스팩은 합병에 따른 잠재적인 주식가치 희석에 대한 추가 정보를 표준화된 양식으로 공시해야 한다. 또한 스팩에 인수되는 기업의 사업 전망을 공개할 때 전망의 근거를 밝히고 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스팩은 합병 주관사 및 관계자가 일반 주주와 분쟁이 생길 경우 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새로운 규정에 대해 "기업이 우회로를 이용해 상장을 했다고 해서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가 허술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결정에 대해 미국증권업협회(ASA)의 크리스 이아코벨라 회장은 “스팩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결정일 뿐만 아니라 사기업들이 대중 자본 시장에 접근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규정과 관련된 변호사들은 WSJ를 통해 SEC의 결정으로 고금리에 허덕이는 스팩시장의 관에 또 다른 못이 박히게 됐다고 평가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