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못 넘는 사과..."검역협상 완료 시점 불투명"
2024.03.11 16:00
수정 : 2024.03.11 16:18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치솟은 사과 가격의 대안으로 떠오른 사과 수입이 검역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수입이 이뤄지면 작황 부진으로 줄어든 생산량을 즉시 보완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동시에 자칫 병해충 등으로 인한 근본적인 생산기반 피해 우려가 커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1일 '과실류 등 수입위험분석 절차' 진행 상황 브리핑에서 "8단계의 수입위험분석 절차는 매 단계마다 수출국과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합의를 거쳐야 한다"며 "우리나라만의 의지로 합의를 마칠 수 없는 만큼 절차 완료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수입에 앞서 우리나라는 국제식물보호협약(IPPC)와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조치(STS)에 근거한 위험분석절차를 거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절차가 아니라 각 나라별로 세부 단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규칙이다.
상대국의 수출 요청을 접수하는 것이 1단계, 수출 품목에 대한 자료를 받는 것이 2단계다. 3단계부터 본격적으로 문헌, 학술지, 관련 자료 전반을 기반으로 위험평가를 진행하게 된다.
한 단계를 넘는 것은 각 단계마다 지난한 일이다. 예로 3단계에서 우리나라가 관련 병해충 200종과 집중관리 병해충 30종을 선별했다고 가정하면, 이를 수출국에서도 검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자국 상품의 안전성에 자신이 있는 만큼 수입국의 관리 기준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서로 납득 가능할만큼 합리적인 과학적 증거가 동원된 다음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결국 각 단계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정혜련 농식품부 국제협력관은 "한 품목에 대해 3~4단계를 진행하던 국가가 내부 사정 등으로 돌연 다른 품목으로 1단계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짧은 시간에 8단계를 모두 완료하는 품목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과의 경우 이같은 검역 절차를 넘기 쉽지 않은 품목이다. 우리나라는 가격 안정을 위해 당장 수요가 급하지만, 수출국 입장에서는 공급에 시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사과 수출을 논의하는 나라는 11개국으로, 이 가운데 1단계 너머를 진행중인 나라는 4개국에 불과하다. 협상이 진전된 4개국 마저도 이미 시작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상태다. 2단계 자료검토를 완료한 미국은 1993년, 5단계에서 표류 중인 일본은 1993년부터 협상을 시작했다. 이마저도 미국은 자몽, 일본은 배를 먼저 수출하기를 원하고 있다.
2016년에 협상을 시작한 독일이 1순위로 사과를 올리며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지만, 완료 시점은 불투명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기존 수입을 허용한 76건의 평균 소요기간은 8.1년에 이르고 있다. 다른 나라 역시 우리나라의 수출을 허용하는데 평균 7.8년을 잡아먹었다.
복잡한 검역절차를 예외적으로 단순화시키는 것 역시 위험성이 높은 선택지다. 특히 5단계에서 진행이 막힌 일본 사과의 경우에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나방류 병해충이 길목을 막았다. 기존 방역 허들을 낮추고 국내에 퍼질 경우 근본적인 생산 기반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요인이다.
강형석 농식품부 기획조정실장은 "무분별한 수입은 물가 안정보다 과거 포도 사례처럼 생산 기반을 무너뜨릴 여지가 있다"며 "냉해관리와 협의체 발족 등 올해 사과생산을 평년 수준으로 되돌리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hlee1@fnnews.com 이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