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소환, '공'은 공수처로...조사 후 단서 확보가 관건
2024.03.18 10:49
수정 : 2024.03.18 13:22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종섭 주호주 대사에 대해 소환을 요청하면 즉각 응할 것이라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이 대사 본인이 잇따라 밝히면서 이제 공은 공수처로 넘어가는 형국이 됐다.
다만 이 대사 출국과 소환을 놓고 정치권의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달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대한 부담은 사실상 공수처가 떠안는 꼴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추가 조사는 필요하며 소환조사가 원칙”이라는 공수처 입장에는 아직 변화가 없다.
대통령실·한동훈·이종섭 "소환 응할 것" 적극 대응
18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이날 국방부 장관 재직 시절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공수처 수사를 받는 이 대사에 대해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대변인실 명의로 언론에 배포한 ‘현안 관련 대통령실 입장’에서 “이 대사는 공수처의 소환 요청에 언제든 즉각 응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런 발언은 이 대사 출국 후 ‘피의자 빼돌리기’라는 야권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읽힌다. 대통령실은 지난 15일에도 “대사 일정과 거주지 등 모두 공개되고, 이 대사는 언제든 필요하면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라는 해명을 했다.
다만 최근 들어선 ‘소환 수용’과 ‘귀국’에 보다 적극적이다. 하루 전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공수처가 즉각 소환하고, 이 대사는 즉각 귀국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문제는 총선을 앞두고 정쟁해서 국민께 피로감을 드릴만 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이 대사 본인도 같은 날 한 공중파 방송 인터뷰를 통해 “공수처가 조사하겠다면 내일이라도 귀국하겠다”며 대통령실, 한 비대위원장과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이던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채상병 순직 사건의 책임자를 수사하는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경찰에 적법하게 이첩된 수사 기록을 회수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등)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 중인 이달 4일 주호주 대사로 임명된 뒤 공수처의 출국금지에 이의를 신청하는 한편, 출국금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 하루 만에 공수처에 출석해 4시간가량 조사받았다. 출금은 8일 해제됐고 이 대사는 10일 호주로 떠났다.
야권을 이를 두고 ‘수사 대상자 빼돌리기’로 공격하고, 여권에선 공수처가 이 대사를 한차례도 소환하지 않은 채 늑장 수사를 했다고 맞서왔다.
따라서 대통령실과 한 비대위원장이 공수처의 즉각 소환을 촉구하고, 이에 맞춰 이 대사가 즉각 귀국해 공수처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힌 것은 야권 공세 돌파를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수사 무르익었나? 소환 시점은
다만 대통령실과 한 비대위원장 등의 요구처럼 소환이 현시점에서 즉각 이뤄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이 대사를 대면 조사할 만큼 수사가 무르익었냐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와 이 대사가 제출한 휴대전화 등 증거물을 분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 대사 등을 수사 외압 관련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한 게 반년여 전인 지난해 9월이지만, 주요 피의자 대부분은 아직 조사하지 못했다.
또 공수처가 이 대사를 출국금지한 것은 지난해 12월 초였으나, 이 대사를 불과 4시간가량 조사한 것은 이 대사 임명 뒤인 지난 7일이었다. 공수처가 ‘뒤늦은’ 혹은 ‘늑장’ 수사로 여권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포인트다.
대통령실의 관여 의혹이라는 민감한 사안 수사와 관련해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고 책임질 지휘부는 여전히 공석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외교적인 면에서 보면 지난 12일 호주 정부에 신임장 사본을 제출하고 공식 활동에 들어간 대사를 불과 한 달이 지나기 전에 다시 국내로 불러온다는 점 또한 부담될 수 있다.
만약 재차 소환조사에서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를 확보하지 못할 때 역풍은 공수처를 향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다음 달 말 서울에서 열리는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에 잠시 들어올 예정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50여일 뒤 조사의 기회가 있는데도 급하게 소환조사를 강행했다가 증거 확보에 실패할 경우 외교와 정치권 등의 비난이 동시에 뒤따를 상황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 대사 역시 소환 통보 없이도 자진 귀국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공수처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제가 자진 출석한다고 해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을 해 본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다음 기일 조사가 준비되면 소환 통보하겠다고 했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주 정례브리핑에서 “수사팀 입장은 확고하다. 소환조사가 원칙”이라 “물리적 거리는 있지만 외교관 신분으로서 국내에 들어와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