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추억을 香으로...눈·코로 함께 즐기세요
2024.04.19 04:00
수정 : 2024.04.19 04:00기사원문
【베니스(이탈리아)=유선준 기자】"이번 한국관은 향(香)으로 사색하고 교감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올해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인 구정아는 "이번 전시는 향을 이용해 관객의 기억과 이야기를 소환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7일 오전(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2024 베니스비엔날레가 개막한 가운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꾸미는 한국관도 이날 개관했다.
개관 30주년을 맞이한 이번 한국관 전시는 구 작가가 단독 개인전으로 참여하고, 야콥 파브리시우스 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과 이설희 큐레이터가 공동 기획했다.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y)'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에 대한 설문을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 진행, 전세계 참여자들의 사연 약 600편을 수집·분석했다. '오도라마'는 향을 의미하는 '오도'(odor)에 드라마(drama)의 '라마'(-rama)를 결합한 단어로, 향은 1996년 이래 구 작가의 광범위한 작업 범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이번 전시도 향을 테마로 한 만큼 한국관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기와 마주친다. 구 작가가 설치한 검은 형상의 캐릭터 '우스(OUSSS)'의 입에선 2분마다 한 번씩 연기(향)를 뿜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태아의 형태인 '우스'가 본인의 피조물이라고 밝힌 구 작가는 "이번 한국관 전시를 위해 3개월간 전세계 참여자들의 사연 약 600편을 수집했다"며 "이중 도시 향기, 밤 공기, 사람 향기, 짠내, 함박꽃 향기, 공중목욕탕, 햇빛 냄새, 안개, 장독대, 밥 냄새, 장작 냄새 등 16개 범주로 분류된 사연을 선정해 '한국의 냄새 풍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구 작가는 향이 기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집중하며 우리가 공간을 감지하고 회상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향의 본질을 탐구하며 분자를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에 대한 그의 관심은 비물질주의, 무중력, 무한, 공중부양이라는 작업 주제로 확장되는데, 전시장에 놓인 설치작품도 이같은 주제를 반영한 것들이다.
구 작가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며, 굳이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며 "사실 비엔날레 기간에 관람객들이 볼 전시가 너무 많으니, 한국관에 와서는 조용하게 사색하며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한국관 전시를 지원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정병국 위원장도 "600여편의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으로 시작된 이번 한국관 전시는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향과 기억이 공간과 사유하는 깊은 인상을 오래도록 남기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관이 우리 미술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플랫폼이 돼왔음을 더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332명(팀)이 초대된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는 한국 작가로 여성 조각가 김윤신(81)과 이강승 작가(46)가 초청됐다. 또 작고 화가 이쾌대(1913∼1965)와 장우성(1912∼2005)의 작품도 본전시에서 소개됐다.
본전시에 초청된 김윤신 작가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40여년간 아르헨티나에서 거주하며 남미를 주요 기반으로 활동했다. 나무와 돌 등 자연 재료를 톱 등으로 다듬어 재료의 속성을 최대한 드러내는 조각 작업을 하면서 조각적 아이디어를 반영한 회화와 판화 작업도 하고 있다. 또 한국과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서구·백인·남성·이성애 중심의 주류 서사에서 배제되거나 잊힌 소수자의 존재를 발굴해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밖에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에는 처음 참가하는 베넹과 에티오피아, 동티모르, 탄자니아 등 4개국을 포함해 총 88개국이 참여한다. 러시아는 지난 2022년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올해도 국가관 전시에 불참한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이날부터 오는 11월 24일까지 7개월간 이어진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