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위기설'에 대처하는 자세
2024.04.29 20:06
수정 : 2024.05.15 11:52기사원문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신용등급 강등(또는 하향)은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회사채 발행금리를 높여 자금조달에 부담을 준다.
통상 기업의 신용등급은 최우량인 AAA에서 D까지 22개 등급으로 세분되지만 BB+급 이하는 '투기등급'이어서 사실상 신용등급으로서 의미가 없다. AA급 이상은 '우량'한 것으로 평가되고, 적어도 A-급은 돼야 회사채 시장에서 (높은 금리에라도) 투자를 받을 수 있다.
6개월 내지 1년 앞을 내다보는 신용등급 전망도 중요한 대목이다. 등급 상향 가능성이 높은 경우 '긍정적', 강등 가능성이 높은 경우 '부정적'이란 평가를 받게 된다.
최근 경기침체에 고금리·고유가·고환율이 겹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신용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출발점이었다. 먼저 건설업계가 직격탄을 맞았고 건설사들에 막대한 돈을 빌려준 캐피털사, 저축은행, 증권사 등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지난해 말 시공능력순위 16위의 태영건설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그 여파로 AA급이던 태영건설의 신용등급은 B급으로 추락했다. 또 GS건설이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신세계건설은 A(부정적)에서 A-(안정적)로 각각 하향 조정됐다. 같은 BBB-급의 한신공영과 대보건설은 등급전망이 나란히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이달 들어 건설사가 발행한 회사채는 '0'이다. 공모채 발행이 어려워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사모채 발행으로 눈을 돌려 봐도 소용이 없다. 회사채로 자금을 확보하는 길 자체가 봉쇄된 셈이다.
최근 한 달 사이 페퍼저축은행과 바로저축은행, KB저축은행, 애큐온저축은행 등 6개 저축은행의 등급전망이 낮아졌고 증권사들도 신용도 하방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모두 부동산 PF 부실 우려가 제일 큰 이유로 꼽힌다.
업황이 좋지 않아 실적부진이 계속되고 있는 석유화학업체와 유통업체 역시 신용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효성화학 등 대기업 계열사들마저 신용등급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BBB-(부정적)'에서 'BB+(안정적)'로 내렸고, 무디스는 LG화학의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조정했다. 여천NCC가 지난달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2년물)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매수 주문은 250억원에 그쳤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국내 신용평가 3사로부터 받은 신용등급이 AA급에서 A급으로 떨어졌다. 이마트에는 '부정적' 등급전망이 매겨진 상태다.
연초부터 흘러나왔던 '4월 위기설'은 글자 그대로 '설'로 끝나는 분위기이지만 한 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5월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자칫 1년 내내 '○월 위기설'이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국에선 금리인하 시기가 6월에서 9월로 지연되고, 예상 횟수가 3~4차례에서 0~2차례로 축소되는 등 기대감이 식어간다. 그 대신 'S(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중동 리스크도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정부가 아무리 "위기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들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내놓지 않는 한 위기설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blue73@fnnews.com 윤경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