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제품여권, 준비 서둘러야
2024.05.04 06:00
수정 : 2024.05.04 06:00기사원문
FN 재계노트는 재계에서 주목하는 경제 이슈와 전망을 전문가 시각에서 분석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유럽여행을 하려면 여권을 지참하는 것은 필수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제품에도 여권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DPP는 제품의 전 생애주기에 걸친 데이터를 디지털화하여 표시하는 것이다. 원재료의 출처, 생산·운송 중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재활용 정보 등이 포함된다.
2022년 발의된 에코디자인규정안(ESPR)에는 현재 우리가 논의하는 '디지털 제품여권'이라는 명칭이 처음 언급됐다. 이에 따르면 유럽으로 수출해 유통되는 모든 물리적 제품은 DPP를 구비해야 한다. 이 법안은 지난 4월 23일 유럽의회 본회의를 통과해 유럽연합(EU) 이사회의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순환가능성이 높은 7대 우선적용 산업(전자제품 및 ICT, 배터리 및 차량, 포장, 섬유, 플라스틱, 건축 및 건설, 식품·물·영양)을 중심으로 2026년부터 순차적으로 DPP가 적용될 예정이다.
여러 국제 표준 기구들은 DDP 제도에 적용될 표준을 개발 중이다. GS1(Global Standard 1)은 이 중 대표적인 기구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바코드 시스템을 만든 곳이다.
GS1의 대표적인 DPP 표준인 디지털 링크(Digital Link) 시스템을 예로 들면, 특정 상품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를 생성해 QR 코드로 시각화한 후 상품에 부착하게 된다. 이 QR코드를 스캔하면 디지털 링크를 통해 DPP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페이지로 이동하게 된다. 이 페이지에는 EU에서 요구하는 지속가능성, 재활용 가능성 등 각종 항목이 모여 있다. 원하는 항목을 클릭하면 구체적인 정보가 담긴 페이지로 연결된다. 기업은 EU가 요구하는 정보를 확보해 둔 후, GS1의 디지털 링크, QR코드와 같은 국제표준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해외 주요국은 적극적으로 DPP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부문이 그렇다. 2023년 8월 발효된 EU배터리법은 2027년 2월부터 EU 내에서 유통되는 전기차·산업용·경량운송수단 배터리에 대한 디지털 여권 구비 의무를 부과한다. 이에 대해 독일은 완성차 3사를 중심으로 Catena-X 플랫폼을 구축했고, 중국은 정부의 주도 하에 전기차 배터리의 이력 추적을 위한 추적 관리 플랫폼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EU는 우리나라의 3대 수출국 중 하나다. 따라서 DPP 적용의 대상이 되는 국내 업계는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동종 산업계 내에서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 개별 기업이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력 추적을 진행하는 것보다는 공동으로 대응하고 협력하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둘째, 글로벌 호환성이 높은 국제표준을 채택해 확장성을 높여야 한다. DPP는 향후 다른 산업 분야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스템 구축 초기에 이를 고려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셋째, DPP 제도에서 요구하는 순환경제 정보들은 단시간 내에 확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리 확보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탄소중립과 지속가능성은 이미 세계적인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DPP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소비자의 의사결정을 지원한다는 표면적 명분이 있으나, 그 실질은 규제로 작용한다. 국내 업계는 이 변화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순환 가능한 제품 개발을 확대한다면 환경적,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보다 투명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제품여권에 전략적인 접근과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
/이은철 대한상공회의소 유통물류진흥원 디지털혁신팀 팀장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hoya0222@fnnews.com 김동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