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는 옛말, 이젠 처월드.."결혼 안 하는 게 속 편해요"

      2024.09.17 11:18   수정 : 2024.09.17 11:21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 결혼 3년차인 인천에 사는 이모씨(42)는 추석이나 설 명절만 되면 행복하지 않다. 시댁에 가기 싫어 하는 아내를 겨우 설득해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시댁에 가서도 문제다.

시댁 부모를 거들기는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 가자고 조르기만 한다. 그럼에도 이씨 부모는 아들 내외가 집에 가서 싸울까봐 며느리한테 쓴소리도 못하는 형편이다.

반면, 이씨는 명절에 처가에 가면 산더미로 쌓인 설거지를 도맡고, 처가댁 식구들의 술 친구가 돼줘야 한다. 이씨는 "연봉도 아내 보다 높은데 평소 집안일까지 도맡고, 명절엔 처가 비위까지 맞춰야 한다"며 "요즘 남자들이 이혼 당하지 않으려면 돈도 잘 벌고 집안 일도 잘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여성 권익이 신장 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커지면서 명절 증후군인 '시월드'가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다.
대신, 남편이 처가에서 눈치를 보고, 명절 일을 전담하는 '처월드'가 고개를 들고 있다.

과거 명절이 돌아오면 여성들은 감당 못할 양의 전을 부치고, 산더미로 쌓인 설거지를 도맡아 명절 증후군을 호소해왔으나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속화 되는 소가족화가 맞물려 이 같은 뒤바뀐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혼 생활 중인 박 모씨(33)도 이번 추석 명절 때 골머리를 앓았다.

처가에서 전을 수십장 부치는 등 명절 일거리를 최선을 다해 거들었지만 "전도 하나 못 부치냐"는 장모의 핀잔만 돌아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대기업에 다니고, 신혼집도 내가 샀는데도 아내가 '칼퇴근 해서 아이 동화책을 읽어주고, 집안 일 하라'고 잔소리 한다"며 "힘든 회사일에 집안일까지 도맡는 독박 결혼생활이면 애초 장가를 안 갔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배우자 집안까지 챙겨야 하는 시월드·처월드로 일컬어지는 '한국 특유의 결혼 문화'와 '독박 육아' 등이 부담으로 작용해 '비혼 주의'를 선언한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1000명의 비혼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80% 이상이 집안의 이해 관계와 독박 육아, 높은 결혼 비용 등 이유로 결혼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속된 말로 '이 꼴 저 꼴 보기 싫어 외로워도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비혼주의자인 한모씨(35)는 "가끔 혼자 살다 보면 외로울 때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요즘 남편은 여러 일을 해내야 한다는 사회 인식과 간섭 하는 처가, 여성에 대한 과잉 보호 문화 등이 부담돼 혼자가 편하다"고 전했다.

10년 이상 가정법원에 재직 중인 한 부장판사는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자존심이 상해 일어나는 시댁과 처가 간의 집안 싸움"이라며 "비혼율이 높아진 이유도 이 같은 문제가 한몫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비혼을 비롯해 저출산, 이혼, 고령화 등으로 1인 가구가 750만명에 육박한 실정이다.
3가구 당 1가구 꼴인 셈이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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