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펑크'와 재정의 역할

      2024.10.01 18:18   수정 : 2024.10.01 18:18기사원문
돈이 조 단위를 넘어서면 감각이 없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돈의 단위가 몇 억원은커녕 몇 만원에 그치는 게 월급쟁이다. 수조원은 무미건조한 숫자에 불과하다.

1조원을 10년 안에 다 쓰려면 매일 2억7400만원을 써야 한다.

올해 세수 재추계 결과 국세수입이 예산 대비 29조4000억원 부족한 337조7000억원에 그칠 것으로 추산됐다. 오차율은 8.1%다. 지난해엔 오차율 16.4%, 결손액 56조4000억원이었다. 2년 연속 대규모 결손이다.
올해 다소 개선됐다는 게 다행이라고 할까.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수 추계 오차가 반복된 상황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과 발언까지 했다.

규모는 다르지만 정부 살림에도 조 단위는 적은 돈이 아니다. 30조원의 세수부족으로 정부 가계부에 비상등이 켜졌다. 대응책 수립은 당연하다. 공개되진 않았지만 재원대책 윤곽은 잡힌 것으로 보인다. 세수부족분을 국채 발행으로 메우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채 발행 대신 기금 등 여윳돈을 동원하겠다고 한다. 연내 집행이 어려운 사업에 돈을 쓰지 않는 '불용'을 통해 채워나가는 것도 병행한다. 국유재산 매각으로 재정 충당도 추진한다. 56조원 넘는 결손이 발생했던 지난해 사용한 대책들이다.

정부 대책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적자국채로 세수부족을 보완하면 미래 세대에겐 부담이다. 건전재정이라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에도 벗어난다. 선택 카드로 꼽기 힘들다. 재정건전성이 흔들려 지속가능성이 훼손되면 대외 신인도가 하락할 우려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냉정해야 한다. 세금이 덜 걷히면 누군가는 부담을 져야 하는 문제가 남아서다. 예산 흐름을 보면 간단하게 드러난다. 정부가 우선 예산 허리띠를 졸라매면 지방이 먼저 타격을 입는다. 지난해 사례다. 지난해 정부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18조6000억원을 불용 처리했다. 잡혀 있던 사업들의 예산을 강제로 쓰지 않고 세수부족분 축소 용도로 활용했다. 내국세의 19.24%는 지방교부세, 20.79%는 교육교부금으로 이전된다. 이 중 일부를 내려보내지 않았다는 뜻이다.

올해 대책도 지난해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지방교부세와 교육교부금을 지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방교부세 4조2000억원, 교육교부금 5조3000억원이 삭감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에서 지방교부세 비중은 약 50%, 지방교육청 예산에서 교육교부금 비중은 약 70%다. 민생예산으로 주로 활용되는 지자체의 돈줄이 막히고 방과 후 돌봄 서비스 등에 대한 지원액은 줄어들 수 있다. 세수결손 부담을 지는 누군가가 이들이 된다.

재정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가 돈을 덜 쓰면 미미한 내수 경기는 방향을 잃을 수 있다. 내수부진 장기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 올해 9월까지 수출은 12개월 연속 플러스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지만 내수효과로 확산되진 않고 있다. 대표적 내수지표인 소매판매액지수는 2022년 2·4분기 이후 9분기 연속 감소했다. 내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중물로서 재정투입 확대가 필요하지만 세수결손으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 몰렸다. 증가세를 지속 중인 수출 또한 정점이 지났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기냉각 가능성, 중국 성장둔화 우려에다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등 대외 불확실성도 수출 중심인 우리 경제에 변수다.

재정은 고도의 정치행위라고들 한다. 세금을 누구에게 걷느냐, 누구에게 지출하느냐 모두 정치적 결정이라는 뜻이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논란이나 상속세제 개편에 대한 관심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출 또한 단순히 결산 수치를 맞추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재정활동을 정부 역할로만 규정하고 예산관료에게만 맡길 일은 아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돌려막기보다는 국회와 제대로 된 협의를 통해 '세수펑크'에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억울하게 세수결손 부담을 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mirror@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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