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관투자자 뒤엔 기술이 대체 못하는 중개인 있다
2024.11.24 19:15
수정 : 2024.11.24 19:15기사원문
미국 텍사스공과대 한문희 교수,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에대 김상현 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 댈러스캠퍼스 비크람 난다 교수는 최근 '기관 중개 브로커 네트워크:유동성 공급 촉진(Institutional Brokerage Networks: Facilitating Liquidity Provision)'을 발표해 학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논문은 기관투자자 간의 브로커 네트워크가 시장 유동성 공급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분석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뮤추얼 펀드와 같은 펀드 상품을 판매하고 관리하는 자산운용사들, 즉 기관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에서 브로커를 통해 형성하는 네트워크가 펀드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기관투자자들은 보통 여러 브로커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으며 브로커들은 또한 다양한 기관투자자와 거래를 통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러한 브로커·투자자 네트워크는 투자자 간에 정교하게 얽혀 있으며 펀드의 성과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1998년부터 2017년까지의 미국 내 뮤추얼 펀드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브로커 네트워크에서 중심에 위치한 펀드들이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네트워크 중심성(Network Centrality)이 높은 펀드들은 투자자와의 네트워크 중심에 위치한 브로커들을 통해 대량의 주식 매매 시 발생하는 가격충격(Price Impact)을 완화함으로써 수익률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내 기관투자자들의 일일 주식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네트워크에서 중심에 위치한 자산운용사들이 상대적으로 더 적은 거래비용으로 주식 거래를 체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기술진보에도 브로커 역할 중요
과거에는 주식 매매가 주로 투자자가 브로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을 넣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최근 고빈도 매매(HFT·High Frequency Trading) 증가와 알고리즘 매매(Algorithmic Trading)를 통한 전자마켓메이커(Electronic Market Maker)의 등장으로 전자주문 방식이 기존 전화주문 방식을 크게 대체했고, 사람이 수행하던 많은 업무가 전산화 및 자동화됐다.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와 마찬가지로 금융 시장에서도 전자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수행하던 역할을 상당 부분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전자브로커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브로커의 역할, 특히 투자자와 브로커 간의 지속적인 거래 관계와 의사소통이 거래비용 절감과 수익률 향상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으며,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쉽게 감소하지 않을 것임을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년간 전자정보통신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금융 시장에서도 많은 기술적 진보가 이뤄졌다. 거래량은 크게 증가했으며, 유동성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 매수-매도 가격 스프레드(Bid-Ask Spread)도 크게 축소됐다. 그 결과 적은 비용으로 주식 매매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든 투자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량매매의 경우 스프레드 내에서 손쉽게 주식을 사고팔 수 있지만, 대량 매매에서는 다른 도전 과제가 존재한다.
대량 매도 및 매수 주문이 시장에 들어오면 주식 가격이 크게 변동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거래가 스프레드 밖에서 체결될 수 있다. 대량 매도 주문이 들어오면 주식 가격이 하락하게 돼 거래가 이뤄지기 전보다 더 낮은 가격에서 매도가 이뤄지고 반대로 대량 매수 주문이 들어오면 가격이 상승해 결국 거래주문을 넣기 전보다 더 높은 가격에서 매수가 이뤄진다. 거래 규모가 커질수록 가격변동 폭도 커지며 이를 가격충격이라고 한다. 대체로 대량 매매를 체결하는 기관투자자에게는 이러한 가격충격이 거래비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브로커, 가격충격 완화 긍정 역할
대량 매매에서 발생하는 가격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들은 거래소를 통해 직접 주문을 넣기보다는 브로커를 통해 거래 상대방(counterparty)을 찾는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브로커는 기존에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기관투자자들과 연락을 취해 거래 상대방을 찾으며, 이러한 거래는 주로 거래소 밖에서 이뤄지는 블록매매(Block Trading) 형태로 체결된다.
네트워크 중심에 위치한 브로커들은 다수의 기관투자자와 거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들 간의 네트워크를 활용, 가격충격을 최소화하면서 대량 매매를 원활하게 진행하고 유동성 공급을 촉진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네트워크 중심성이 높은 브로커와 관계를 맺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은 대량 매매에서 발생하는 가격충격을 효과적으로 완화시키며, 이로 인해 펀드 수익률이 향상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요 결과이다.
개인투자자들이 펀드 상품에 가입하고 환매하는 과정에서 투자자금이 펀드에 유입되거나 유출된다. 자금이 유입되면 기관투자자들은 보유주식을 늘리고, 자금이 유출되면 보유주식을 매도한다. 이러한 펀드 투자자금 유입과 유출에 따른 유동성 매매(Liquidity Trading)는 기관투자자들의 매매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결과적으로 펀드 수익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유동성 매매는 주식 가격 변동에 대한 특별한 기대 없이 이뤄지기 때문에 역선택(adverse selection) 위험이 상대 투자자에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보 비대칭(information asymmetry)으로 인해 거래 상대방은 이러한 정보를 쉽게 알 수 없으며, 그 결과 특정 주식에 대한 정보를 가진 투자자(Informed Trader)와의 거래에서 역선택으로 인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 기관투자자가 특정 주식에 대해 대량 매도 주문을 내면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거래 상대방은 그 매도 주문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악재 때문에 발생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때 브로커가 투자자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해 정보 비대칭을 경감시킬 수 있다. 만약 브로커가 대량 매도 주문이 특정 주식의 악재가 아닌, 펀드 상품 환매 증가에 따른 유동성 매매라는 정보를 알고 이를 다른 기관투자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가격충격을 완화시키고 대량 매도 주문을 성사시킬 수 있다.
즉 네트워크 내에서 브로커들은 기관투자자 사이에서 거래 상대방이 정보를 보유한 투자자인지 유동성 투자자인지를 구분하는 데 도움을 줘 정보 비대칭 경감을 통해 가격충격을 완화한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주요 결과이다.
■브로커, 정보 비대칭 완화
투자자들이 브로커를 통해 주식을 매매할 때 투자자와 브로커 간에 많은 정보가 교환된다. 브로커가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투자자는 이익을 얻을 수도,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번 연구는 주식 시장에서 브로커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며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브로커의 부정적인 역할에 주목해왔다. 예를 들어 브로커가 고객의 매매정보를 다른 투자자에게 유출, 이를 바탕으로 한 거래로 가격 변동이 발생하고 결국 고객이 큰 손해를 보는 사례들이 빈번히 보고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금융 시장의 효율성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투자자와 브로커는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높은 매매비용이 발생할 경우 그 관계가 약화될 수 있다. 물론 브로커를 통한 거래정보 유출이 때때로 발생하기는 하지만 유동성 공급 촉진과 같은 긍정적 역할은 투자자와 브로커 간의 관계 형성 및 유지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네트워크 중심에 위치한 브로커들은 거래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찾아내고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며 가격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로 인해 대량 매매 주문을 원활하게 흡수하고 유동성 공급을 촉진할 수 있다. 또한 네트워크 중심에 있는 기관투자자들은 중심성이 높은 브로커들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대량 매매를 큰 가격충격 없이 성사시키며, 그 결과 펀드 수익률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정리=longss@fnnews.com 성초롱 기자
김상현 교수는 캐나다 윌프리드로리에대에서 재직 중이다. 텍사스대 댈러스캠퍼스에서 재무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대에서 통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22년 윌프리드로리에대에 합류하기 전 홍콩대에서 재무학 연구 조교수를 지냈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 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