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는 발레와 친구하기

      2024.11.28 17:43   수정 : 2024.11.28 19:13기사원문
11월 경희대 무용학과 학생들은 창작발표회로 분주한 달을 보낸다. 9월 2학기 시작과 함께 나름대로의 주제를 가지고 창작발레를 만들어 나가는데 클래식발레의 언어를 가지고 조금씩 비틀어서 표현하기도 하고 또는 정확한 클래식 언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주제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1학기에 레러토리 공연을 하는데 정형화된 코르셋 의상에 자기 자신을 입혀 고전 레퍼토리 발레 작품을 공연한다면 2학기에는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신에게 적합한 옷을 재단해 만들어 입듯 오롯이 자기만의 언어로 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린다.

창작 작품에 대한 안무, 의상, 무대, 조명 등 모든 요소에 관한 정답은 없는데 자신이 표현하려는 이야기들을 창의롭게 표현하여 보는 이들을 이해시키고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창작은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경험 그리고 사고의 깊이나 관심 등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호 적용되어 표현되는 것으로, 작품을 보면 그 학생의 성격·관심사 등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결과물은 아는 만큼, 보는 만큼 표현되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만족하는 작품일지라도 보는 이가 공감하기 어려운 작품도 있고 내용이 약하더라도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도 있다.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10월 서울시발레단에서 네덜란드의 거장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의 작품 '캄머발레'에 출연하게 되었다. 2007년 네덜란드발레단 수석무용수 시절 처음으로 이 작품을 공연했었는데 17년 만에 다시 무대에서 공연하게 되니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캄머발레는 1995년 네덜란드 댄스시어터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무용단의 내로라하는 8명의 무용수들의 캐릭터와 기량이 돋보이도록 안무하여 큰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하얀 도화지 같은 무대 바닥에 각 캐릭터에 어울리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색깔의 유니타드를 입고 특별한 스토리 없이 아주 미니멀한 움직임과 음악으로 무대를 만들어낸다. 군무, 2인무, 독무를 통해 무용수가 가진 에너지, 인간의 감정과 관계성의 정서가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작품인데 가구로 치면 화려한 로코코 스타일이 아닌 북유럽의 단순하고 미니멀리즘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한 동작과 손짓 하나, 눈빛 하나가 작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 단순함 아래에 깊고 복잡한 이야기들이 깔려 있어서 마치 여러 가지 색깔들이 합쳐져서 심플한 블랙색상이 나오듯 여러 겹의 섬세한 감정과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쌓이게 된다. 이러한 감정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감정의 중첩을 보는 이들이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끔 이런 모던발레 작품을 공연할 때 안무가의 의도와 작품의 해석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모든 것에 대한 정답과 해석을 정확히 하려는 한국인 특유의 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일 것이며, 나 또한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해석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는데 누군가가 해석해 놓은 것을 정답인 듯 받아들이는 것이 점점 일반화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과연 예술에 있어서 해석의 일반화가 가능할까? 현대발레는 마치 난해한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봐야 하며, 정답이 없는 것이며 관객은 자신이 해석하고 싶은 방식으로 작품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안무가와 무용수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정확한 정답이 없다는 것에 불안감을 가지는데 그러다 보면 정작 봐야 할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안무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맘 편히 내 마음대로 즐기는 것도 관객으로서의 특권이 아닐까. 물론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고 안무가의 의도를 유추하게 하는 것은 무용수와 안무가의 힘일 것이다.
좋은 작품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작품은 그것을 보는 만큼, 아는 만큼 비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다양한 해석을 가지게 되는 현대발레 작품이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이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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