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버린 K칩스법…중소부품업계 본사 해외로 대탈출 위기
2024.12.12 18:30
수정 : 2024.12.12 18:30기사원문
"아무리 국가가 혼란스럽더라도 국가대항전인 반도체 전쟁엔 여야가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힘을 합쳐야 하는데 안타깝다."
본격적인 '탄핵정국'에 돌입하며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 등 업계의 숙원 법안들이 줄줄이 '탄핵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반도체 업계는 '맏형' 삼성전자가 주력 사업인 메모리 사업에서 부진을 겪는 등 혹독한 겨울을 겪는 가운데, 예상치도 못한 정치 리스크까지 덮치면서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혹한이 불어닥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엑소더스"
12일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양향자 전 국회의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탄핵안 통과 이후에도 탄핵과 차기 대선을 놓고 정쟁이 이어지면서 반도체 지원 법안이 뒷전으로 밀릴까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양 전 의원은 반도체 대기업은 물론, 최근 정부가 반도체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원해 온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와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의 피해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양 전 의원은 "정치권이 혼란스럽더라도 미래를 위한 법안은 통과시켜야 하는데 의회가 멈추면 대외 국가신용도는 낮아지고 고스란히 자금력이 약한 반도체 업계의 중소·벤처기업에 타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면서 "업계에서는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엑소더스(대탈출)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불황으로 울상인 팹리스 업체들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반도체 생태계의 기반'으로 불리는 팹리스 역량이 약점이란 평가를 받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기초 체력 강화에 나선 바 있다.
팹리스 업계의 관계자는 "최근 업계 전반적으로 자금이 안 돌아 위기에 빠진 업체들이 많은데 정부가 지원 대책을 내놓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태가 발생해 망연자실한 상태"라면서 "사실상 정부가 마비된 상황에서 정부가 약속한 지원을 계획대로 이행할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윤석열 정부 산업·통상·에너지분야 주요성과 및 향후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당시 박성택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팹리스 설계에 지원하기 위한 설계지원센터, 팹리스 특화단지 지정 등 시스템반도체 지원과 관련된 다양한 대책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R&D 약화로 패권 바뀔 수도"
이번 탄핵정국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바꿀 수 있다는 우려감도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 A씨는 "반도체 패권은 곧 기술력에서 나온다"면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업종으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사업인데 세액공제가 당장 내년부터 불투명해지면서 타격이 커질 것"이라고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했다.
당초 정부는 올해 일몰될 예정이던 국가전략기술 R&D에 대한 세액공제를 2027년까지 3년 연장할 방침이었으나 지난 10일 통과된 수정안에서는 일몰 기한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국가전략기술 통합투자세액 공제율 인상도 여야가 합의한 것과 달리 무산됐다. 다만 통합투자세액 공제 일몰 기한만 정부안에 맞춰 3년 연장되는 등 '반쪽짜리'에도 못 미치는 수정안만이 간신히 통과됐다.
경쟁국인 미국, 일본, 대만, 중국이 반도체 업계에 파격 지원을 이어가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업계는 경쟁국 대비 지원이 부실하다는 평가가 업계 안팎에서 나온 바 있다. '반도체 권토중래'에 나선 일본은 지난달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부문에 2030년까지 10조엔(약 90조8810억원) 이상의 보조금 지원에 나서면서 K반도체 추격에 나섰다.
R&D 역량 강화의 발목을 잡는 '주 52시간제 예외' 조항도 여야 합의에 실패하면서 K반도체를 위태롭게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