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민생의 시간이다

      2024.12.16 19:23   수정 : 2024.12.16 19:39기사원문
내란 혐의로 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가결 이후 정국이 혼란스럽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권한을 위임받아 내치와 외치를 대행하고 있다. 이제 헌법과 법률에 따른 헌법재판소의 법리적 판단만 남았다.

문제는 헌재의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국론은 여전히 분열된 상태라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선 늘 상반된 두 가지 표정이 있다.
한쪽은 탄핵의 정당성과 윤 대통령의 조기 하야를 촉구하고, 다른 한쪽에선 탄핵의 부당성과 거대야당의 폭주를 단죄하라고 외친다. 통상 2~3개월 소요되는 헌재의 주문이 나올 때까지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국제정세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미국 지상주의'를 표방하며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관세폭탄 등 연일 '경고성 구두 정치'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던 지난 2017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직무정지 및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가 지금과 꼭 닮았다. 유럽과 북미는 물론 중국은 이미 '관세폭탄 사정거리'에 놓여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협의를 완료한 한미방위비협상 청구서는 사실상 가격인상이 목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는 북한의 개입으로 해법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변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김정은과의 케미를 앞세워 만남을 예고했다. 전통적 혈맹인 한미 관계를 감안할 때 거의 '한국 패싱' 수준이다. 한반도 비핵화 이슈가 자칫 북미대화를 고리로 북한의 핵 보유국 인정을 전제로 한 핵 군축협상이라는 재앙으로 변질될까 우려스럽다. 한껏 물오른 K방산 수출도 일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오죽하면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조차 외교통상 면에서 한국의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겠나.

더 큰 문제는 휘청거리는 경제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후유증이 여전한 상황에서 수출·생산·소비 지표까지 악화되면서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과 파산 회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탄핵 이슈는 '경제약자'층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 자영업자와 중소 영세상공인은 갈수록 생존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연말 대목마저 실종되는 분위기다. 신용정보원 등에 따르면 올 10월 말 기준 은행 대출 등을 연체한 개인차주 수가 610만명을 넘었다. 연체잔액은 무려 50조원대가 코앞이다. 서민층 급전창구인 카드론 잔액은 42조원대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곧바로 금융의 막다른 골목인 불법 사금융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대기업 10곳 중 7곳은 내년 자금사정이 올해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마른 수건 짜기식' 신년 경영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기업의 돈줄이 마르면 투자여력이 줄어 내수·생산·수출의 동반부진은 불가피하다. 이미 내수부진이 장기화돼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두 달 연속 마이너스다. 여기에 정국불안까지 겹치면서 개인투자자와 외국인의 K증시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의료·교육·연금·노동 4대 개혁은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와중에 국정혼란 수습의 키를 잡아야 할 정치권은 벌써부터 '조기 대선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집권 여당은 한동훈 대표가 사퇴하고, 권성동 새 원내사령탑을 필두로 친윤계가 장악해 거대야당에 맞서고자 전열을 재정비 중이다. 위기상황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탄핵됐다고 야당이 여당 되나' '탄핵됐으니 여야가 따로 없다'고 쌈박질한다. '여야정 국정협의체' 구성은 표류하고 있다. 마치 어릴 적 골목에서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우리 집에 왜 왔니' 놀이처럼 치기 어린 꼴이다.
지금 대한민국호(號)는 탄핵정국이라는 커다란 암초에 부딪혔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어렵게 쌓아올린 코리아 밸류업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여차하면 망망대해에 가라앉고 만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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