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 부부의 실태

      2024.12.28 10:40   수정 : 2024.12.28 19:03기사원문


[파이낸셜뉴스] 필자는 2012년 2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가사단독 재판부, 가사비송단독 재판부, 가사신청단독 재판부, 가사합의 재판부, 가사비송합의 재판부 및 가사신청합의 재판부에서 재판장 및 배석판사로 근무하면서,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2022년 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가사합의 재판부, 가사신청합의 재판부, 가사비송합의 재판부, 가사항고 재판부 및 가사항소 재판부 재판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이혼 사건을 처리한 바 있으며 현재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며 많은 이혼 소송을 수임하여 사건을 진행하고 있다. 오랜 재판 경험에 더하여 최근 변호사로서의 경험도 점점 쌓여가는바 오늘은 많은 부부들이 고민하고 있고, 이혼 사유로 자주 등장하는 리스(less)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리스 부부란
우선 ‘리스 부부’라는 용어가 흔히 쓰이고 있는데 사실 부부간에 어느 정도 횟수의 성관계를 가져야 리스 부부이고 아닌지가 명확하지 않다.

어떤 부부는 한 달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떤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도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활화산처럼 성욕이 강한 사람이 있을 테고, 천성적으로 성적 에너지가 작은 사람도 있는 등 사람마다 또 부부마다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들이대기는 어렵다.
예전에 여러 부부들이 나와서 서로의 애로사항을 하소연하는 어떤 TV 프로그램을 봤는데, 어떤 커플의 부인이 자신의 남편이 매일 성관계를 요구해서 너무 힘들고 그것 때문에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로 괴롭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다른 커플의 부인들은 괴롭다고 하소연하는 그 부인이 너무 부럽다며 그들의 남편도 좀 저렇게 적극적이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개별 부부마다 각자 느끼는 바와 처한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여러 논문이나 관련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한 달에 한 번도 성관계를 하지 않는 부부, 즉 1년으로 따졌을 때 10회 미만의 성관계만 가지는 부부를 리스 부부로 본다고 한다. 위 기준을 따랐을 때 전세계적으로 약 20%의 부부가 리스 부부이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36% 정도가 리스 부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왜 우리나라의 리스 부부 비율이 높은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논문이나 전문가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은 사실 이혼 소송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앞서 밝혔듯이 부부들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각 개인마다 성향도 다르며 나름대로 다 속사정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2010년대 초반 그리고 2020년대 초반 10년 차를 두고 가사 재판을 했는데 통계를 정확히 내 본건 아니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남편 쪽에서 부부관계를 원하는데 부인들이 성관계를 거부하는 그런 케이스들이 많았던 반면 2020년대에는 오히려 부인 쪽에서 부부관계를 원하는데 남편 쪽에서 성관계를 거부하여 문제가 된 케이스들이 많았다. 왜 이렇게 남녀 성향 차이가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필자로서는 알 수도 없고 연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실제 내 주변의 많은 남성들이 예전보다 성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고, 부부 관계에 소극적이며, 실제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형식적인 ‘의무방어전’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리스가 문제 되는 경우
부부가 모두 엄청난 성적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서로 원하는 만큼 부부관계를 하고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리고 리스 부부라고 해도 부부 쌍방이 지내는데 전혀 불편한 게 없으면 이혼 문제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부부 관계가 거의 없어도 잘 통하는 대화나 여러 취미 생활을 통해 강한 결속력과 유대감 내지 정서적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부부들도 많다. 문제는 부부 일방이 너무나 성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데 다른 한쪽은 성관계를 계속 거부하거나 피하는 경우이다. 우리 민법 826조는 부부간의 동거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그 동거 의무 안에는 성적으로 서로 교섭할 의무도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부부 일방의 성관계를 상대방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그것은 민법 제840조 제6호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성관계 요구를 단 한 차례 거부했다고 해서 바로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1년 동안 정당한 이유 없이 성관계를 지속해서 거부하였다면 이혼 사유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6개월 동안 정당한 이유 없는 성관계 거부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만약 된다면 5개월 거부는 어떨까? 그리고 그 기간에 대한 어떤 일률적인 기준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적에너지가 떨어지는 노부부의 경우에는 그 기준을 달리해야 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각 부부마다 성향도 다르고 처한 상황이 모두 달라 일률적인 기준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니와 적절하지도 않다.

그리고 성관계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출산 직후 몸이 온전치 않아 일정 기간 있었던 성관계 거부를 정당한 이유 없는 성관계 거부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나아가 부부 일방이 신체적 사고를 당하여 성관계가 물리적으로 불편한 경우에도 성관계 거부를 문제 삼을 수 없다. 신체적 불편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부부 일방의 원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사망하여 애도 중인데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이를 거부해도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실무상 정당한 이유 있는 성관계 거부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 사건 중 처음에는 안그랬지만 부부 관계가 오래되면서 남편과 성관계 할 때마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 남편의 성관계 요구를 조금씩 거부하면서 참고 하다가 나중에는 성관계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운 일로 다가와 리스 부부가 되었다는 사건도 있었는데 여기서 부인의 성관계 거부가 정당한 이유 있는 거부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매우 곤란했었다.

리스를 유책 사유로 입증하는 방법
부부간의 성생활이라는게 매우 은밀한 영역이므로 정당한 이유 없는 성관계 거부를 이혼 사유로 주장하지만 입증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부부 일방이 계속 성관계 요구를 했는데 상대방이 오랫동안 거부해왔다고 주장을 하면, 상대방이 ‘난 요구 받은 적도 없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원고의 주장은 모두 망상이다’라고 답변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재판부는 누구 말을 믿어야 될지 알 수 없게 되어 입증책임에 따라 원고의 주장을 이유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한 이유 없는 성관계 거부를 이혼 사유로 삼고자 한다면 증거를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다. 본인이 대화 당사자로 포함된 대화의 녹취는 불법은 아니므로 부부 일방이 성관계를 요구하고 상대방이 별다른 이유 없이 장기간 성관계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대화를 녹음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녹음이 불편하다면 위와 같은 내용을 카톡이나 메시지로 보내고 상대방의 답변 내지 무대응을 수집해 놓는 것도 방법이다. 소심한 분들은 상대방에게 성관계 요구를 직접 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기장이나 달력 등에만 표시해 놓고 이를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유형의 증거는 상대방이 증거력에 대해 다투는 경우 증거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으므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성관계 거부를 이혼 사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이른바 ‘빼박 증거’를 미리 확보하는 것이 좋다.

마치며
부부간의 성생활은 지극히 프라이빗한 부분이다. 그래서 성욕의 정도라든지 관계 시 개인적인 성적 취향이라든지 다양하게 조율되어야 할 점들이 많은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서로 안 맞게 되면 성관계는 굉장히 힘든 숙제처럼 느껴질 것이다. 실제 사건에서 알고 보면 ‘성생활에 대한 불만족’인데 겉으로는 ‘성격 차이’를 이혼 사유로 주장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사실 혼인 전에 남남이었던 부부의 성격도 100%로 맞을 수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 처음부터 완벽한 속궁합은 존재하기가 어렵다. ‘우리 부부는 성격이 잘 맞아요. 우리 부부는 속궁합이 끝내줘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보는데 사실 그런 경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맞춰주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니 다른 부부가 너무 완벽하게 잘 맞는 거 같다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부부가 같이 살아가며 성격도 맞춰 가고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것처럼 속궁합도 서로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
원래부터 잘 맞는 사람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서로 다른 취향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맞춰 나가는 노력을 최대한 해보아야 한다. 다만 그 노력의 정도나 범위가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 내라면 계속 노력을 해야 하지만 본인이 희생하면서 맞추어 나가는 노력의 정도가 자신의 수인 한도 밖이라면 이혼도 고민해 볼 만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결핍을 느낄 때 바람을 피운다고 하므로 부부간의 성관계에 있어 어느 일방에 너무 큰 결핍이 있다면 결국 그 일방이 불륜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므로 험한 상황을 맞이하기 전에 미리 정리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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