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로 작용하는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제도

      2011.02.18 19:39   수정 : 2011.02.18 19:25기사원문

2007년 12월 당시 삼성라이온즈 소속이었던 임창용의 일본프로야구팀 도쿄야쿠르트 스왈로스로의 이적 소식은 몇몇 궁금증을 자아냈다. 우선 이적 시기가 임창용의 전성기가 아니었다. 또 그의 계약조건은 외국인 선수 최저수준 연봉인 30만 달러에 그쳤었다. 이는 이전에 일본으로 진출했던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금액이었다. 보통 선수들이 자신의 전성기 때 최고의 몸값을 받고 해외진출 했던 경우와 달리 팀 내에서 퇴물 취급 받았던 시기에 결정한 일이었다.

3년 전 그가 일본 진출을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년 후 한국으로 돌아올 거라고 예상했다.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은 후 좀처럼 실력을 되찾지 못했다곤 해도 데뷔 후 10여년 동안 팀 에이스로써 활약했던 그에겐 조금 가혹한 예측들이 난무했다. 그가 일본 진출 이전 두 시즌 동안 나선 이닝도 121.1이닝에 불과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부상 덕에 2년간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것이 그가 일본에서 뛰어 오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적은 이닝수로 팔에 무리를 주지 않았기에 확실한 재활의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지난 해 일본에서 세 번째 시즌을 마치고 올해 네 번째 시즌을 준비하는 임창용은 구단 역대 투수 최고 연봉을 받게 됐다. 그는 올해 “센트럴리그 세이브왕을 차지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내놨다. 그의 지난해 성적은 35세이브로 이 부분 센트럴리그 2위이다. 그는 신무기로 너크커브볼을 익히면서 세이브왕에 대한 확신을 나타냈다. 올해 35살의 임창용은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야구팬이라면 타지에서 재기에 성공한 임창용의 소식이 기쁠 것이다. 우리가 이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이유는 FA(자유계약선수)제도의 확립 때문이다. 임창용은 2000년 한국프로야구에 생긴 FA제도의 수혜자로 볼 수 있다. 만약 이 제도가 없었다면 그는 국내 구단에서 재기 불능의 선수로 낙인 찍혀 은퇴 수순을 밟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선수에게 한없이 좋아 보이는 FA제도. 이면은 있었다. 지난 해까지 국내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던 이도형은 FA 자격 신청 후 어느 팀에게서도 영입제의를 받지 못해 어쩔 수 없는 은퇴를 택하게 됐다. 이는 현재 지나치게 높게 측정된 국내 FA 제도 보상제도 때문에 구단에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높은 장벽의 제도로 에이스급 선수 이외에는 이적은 꿈도 꾸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10년간 FA 제도로 해외, 국내에서 이적한 선수는 25명에 불구하다. 다시 말해 FA제도는 에이스급 선수에게만 주어진 특혜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5일 이도형은 한국야구위원회(KBO)상대로 ‘야구규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현재 구단에게 유리한 FA제도로 FA 자격을 행사 할 수 있는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실 이번 소송에서 승리한다고 해 이도형이 내년에 선수로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는 앞으로 선수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자처한 셈이다.

한때 퇴물로 여겨졌던 임창용의 선택을 놓고 현재 옳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몇년 후 이도형이 하고 있는 싸움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고 판단되길 바랄 뿐이다.

선수, 팬, 구단이 함께 선진화 된 제도를 받아 들이는 것이 진정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프로야구의 모습인 것이다.



/longss@fnnews@com 성초롱기자

Hot 포토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