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산숲에 바람이 불면, 일렁이는 초록..부산은 바다,라는 말은 틀렸다

      2018.04.05 17:35   수정 : 2018.04.05 17:35기사원문

【 부산=조용철 기자】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올해 꼭 가봐야 할 세계적 명소 52곳을 선정, 발표하면서 대한민국의 항구도시 부산을 포함시켰다. 우리나라에선 유일하게 선정된 부산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뉴욕타임스가 부산에 주목한 이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바다 때문만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짧은 소개문과 함께 실은 기사에서 부산을 영화와 디자인의 도시로 소개했다.

부산에는 독특한 디자인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곳이 즐비하다며 옛 공구상가에서 카페거리로 변모한 전포동과 이곳의 특색 있는 가게들, 초량동 옛 백제병원에 들어선 브라운핸즈커피 등을 콕 집어 소개하기도 했다.

갈맷길, 부산사람 삶 묻어나는 아홉갈래 길

또 하나 부산을 즐기는 방법은 부산광역시가 9개 테마로 조성한 '갈맷길'을 따라 길을 걸어보는 것이다.
부산에는 유달리 도로 위 터널이 많고, 섬과 육지,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많다. 1934년 건설된 영도다리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바다 위에 놓인 다리로 유명하다. 부산 사람들은 그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자신들의 삶을 새겼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철로와 전찻길이 생겨났고 이 길을 따라 피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였다. 이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산자락마다 둥지를 틀면서 산중턱을 감싸는 '산복도로'가 만들어졌다.

아홉산숲, 한 집안이 400년 가꿔온 숲


부산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길을 걷다보면 부산의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는 기장군 철마면에 다다른다. 갈맷길 제9코스 끄트머리에 자리잡은 이곳에는 한 집안이 400년 가까이 가꾸고 지켜온 숲이 있다. 아홉산숲이다. 대나무숲이 울창해 원시의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곳에는 대나무숲 외에도 편백나무 숲, 삼나무, 은행나무 등의 인공림과 수령이 수백년은 족히 넘은 금강송을 포함한 천연림 등이 있다. 남평 문씨 일가가 인근 미동마을에 정착하며 이 아홉산숲을 일궜다. 문백섭 대표가 9대째 이곳을 지켜오고 있다. 오랜 세월 숲다운 숲이었기에 수많은 생명들이 깃들었다. 고라니, 산토끼, 꿩들이 우거진 숲과 대밭에 둥지를 틀고 오소리, 족제비, 반딧불이도 함께 살아간다. 부산 도심으로 들어가기 전 아홉산숲부터 둘러보자.

아홉산숲 탐방로는 매표안내소 옆 구갑죽 마당과 관미헌에서 시작한다. 거북이 등껍데기 형상을 한 구갑죽(龜甲竹)이 여행객을 맞는다. 거북이 등껍데기 같은 색상에 울퉁불퉁한 모양이다. 맹종죽이 길고 날씬하게 뻗은 몸매를 자랑한다면 구갑죽은 신기함이 눈길을 끈다. 그 뒤에는 문중의 종택으로 '고사리처럼 귀하게 본다'는 뜻을 가진 관미헌(觀薇軒)이 위용을 뽐낸다. 굿터(제1 맹종죽숲)와 인접해 있는 금강소나무 숲도 아홉산숲의 자랑이다. 수령이 400년이나 되는 소나무가 보존된 영남 일원의 드문 군락이다. 이곳 소나무를 비롯해 아홉산숲에는 116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아홉산 숲의 탐방로 가운데 굿터와 평지대밭은 맹종죽 숲이 그야말로 수를 놓은 제일의 명소. 먼저 제1 맹종죽숲인 굿터는 약 1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온 맹종죽을 처음 심은 곳으로 전해지는데, 오랜 세월 마을의 굿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바로 이곳에서 영화 '군도' '협녀, 칼의 기억' '대호' 등이 촬영됐다.



■9대에 걸쳐 지켜온 천연림, 아홉산숲

조금 더 들어가니 두 손으로 움켜쥐기 벅찰 정도의 굵은 대나무가 끝없이 이어진다. 대나무의 종류가 죽순의 굵기를 결정한다. 대죽순의 굵기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고 다만 위로 성장할 뿐이다. 연둣빛부터 시퍼런 초록빛까지 제각각의 색을 띤 대나무 앞에 서면 지난 겨울 매서운 바람은 온데간데없고, 양지와 음지를 오가며 오묘한 바람 소리를 불러모은 대숲이 주는 경외감에 압도돼 온몸이 마비되는 듯하다. 지난해 봄부터 자란 것도 있다는데, 불과 일 년도 안 돼 하늘을 찌를 만큼 솟아났다고 하니 믿기 어려울 정도다.

굿터에서 탐방로의 가장 절정인 평지대밭의 맹종죽 숲으로 가는 길도 압권이다. 개잎갈나무와 맹종죽이 양쪽으로 늘어선 채 탐방객을 반긴다. 이 숲 전체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원함의 정의는 온도가 아닌 상쾌함이다. 그리고 나타난 평지대밭. 빽빽하게 들어선 대나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코와 입, 그리고 허파까지 모든 게 자동문처럼 열린다. 형언할 수 없는 신선한 공기와 대나무향이 온몸에 배도록 날갯짓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진 한 장으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인 전국 최대 규모의 이 맹종죽 숲은 1960~70년대 부산 동래 지역을 돌며 식당 잔반을 얻어 이를 비료 삼아 만들었다고 한다.


■길 따라 부산 시민의 삶이 묻어난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스피드 위주의 생활문화에서 느림과 웰빙의 문화로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부산 곳곳에 둘레길이 조성됐다. 최근 들어서는 '걷고 싶은 길, 갈맷길'을 테마로 부산 전역에 9개 코스, 20개 구간이 도시브랜드로 조성됐다. 갈맷길, 기장 해안 100리길, 해운대 삼포길, 이기대길,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서구 볼레길, 낙동강 하구 노을길, 회동수원지 사색길 곳곳에는 부산 시민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갈맷길은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다. 부산의 산과 바다, 강, 온천을 걸어서 체험하는 길로 부산 곳곳을 연결하는 총 9개 코스 21개 구간, 278.8㎞ 길이로 2012년에 만들어졌다. 갈맷길은 '청춘의 바다'로 불리는 광안리해수욕장과 이웃하고 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의 야경이 끝나는 곳에 염전이 있던 분포를 넘어서면 새로운 바다가 열리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이기대(二妓臺)가 반긴다. 갈맷길 2-2구간인 민락교에서 오륙도까지의 코스다. 치마바위의 호탕함과 박골새 사이로 몰려오는 파도, 그리고 농바위에서 오륙도 쪽 전경은 이기대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태골을 넘어서면 오륙도가 수평선을 배경으로 성큼 다가선다.



오륙도는 뭍으로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밭섬)으로 배열돼 있는데 방패섬과 솔섬이 물때에 따라 썰물이면 하나로, 밀물이면 두 개로 분리돼 5개 또는 6개의 섬이 되는 현상에서 오륙도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오륙도는 남해와 동해의 분기점이다. 겨울 저녁 굴섬에 날아드는 민물가마우지의 비행이 장관이다.

오륙도를 전망할 수 있는 용호동 쪽엔 지금 유채꽃이 활짝 피어있다. 특히 '오륙도 스카이워크' 일대가 압권이다. 2013년 조성된 오륙도 스카이워크는 해안 절벽 위에 철제빔을 세우고 그 위에 유리판 24개를 말발굽형으로 이어놓은 유리다리로 길이는 15m 정도다. 오륙도 스카이워크가 세워진 해안가 절벽의 옛 지명은 '승두말'이다. 말안장처럼 생겼다는 의미다.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는 장관을 투명한 유리다리를 통해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륙도 스카이워크 뒤편의 산자락에 조성된 작은 공원인 해맞이 공원 일대에도 유채꽃이 피면서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풍광을 연출한다.



갈맷길 8-1구간의 회동수원지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만큼 평탄하고 쉬운 길 중 하나다. 수영강과 회동호 수변이 제공하는 경관이 빼어나다. 땅뫼산에서 윤산 자락을 휘감아 돌며 명장정수사업소까지 이어지는 수변길은 아홉산 줄기가 회동호에 병품처럼 서 있고 물새들이 한가로워 중국의 소상팔경을 연상케 한다. 회동수원지는 일제강점기인 1942년 조성되면서 수몰민의 원성과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간 전체가 옛날 사천으로 불렸던 수영강의 흐름을 따라 동행하는 길로 부산팔경의 한 곳인 동대를 지나면서 도심을 관통해 옛 좌수영의 영화가 서려있는 나루공원을 지나 민락교에서 바다와 만난다.

다양한 관광 코스와 즐길거리가 제 모습을 갖추며 부산의 새로운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는 '송도 해안 볼레길'도 완연한 봄 날씨를 맞아 바다 경치를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붐빈다. 우리말 '보다'와 '둘레길'을 합쳐서 만든 '볼레길'은 볼거리가 많은 둘레길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볼레길은 송도 해수욕장의 현인광장을 출발해 송도 해안산책로와 암남공원 해안길, 송도해수욕장간 순환도로를 잇는 9.3㎞의 산책로를 말한다.



송도 해수욕장에서 시작하는 송도해안산책로에는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절경이 펼쳐진다.
송도 해안 산책로는 짜릿하게 출렁이는 흔들다리, 산책로와 낚시터 등을 갖추고 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명품 해안절경 코스로 손색이 없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2억년 전 퇴적암으로 형성된 암남공원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장군산의 기암절벽이 바다와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지층이 처음 쌓인 약 9000만년 전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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